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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Jan 03. 2024

별일 없는 일상에 감사하며

자유로운 고독을 넘어 외로움이 밀려올 때

13년여 만에 도쿄로 복귀하여 오늘로써 338일째다. 또래들보다 일찍 결혼하여 두 아이 모두 성인인 데다 교직에 있는 아내는 커리어 막판에 휴직을 하기 어렵다 보니, 금번에는 단심부임을 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50대 초반에 홀아비 신세가 되어 이것저것 신경 쓸 일들이 늘었지만, 그만큼 혼자만의 자유도 누리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소소한 일상’에서의 ‘자유로운 고독‘을 만끽하고 있다. 회사 외에는 아주 제한적으로만 사람들과 교류하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 홀로 요리하고, 운동하고, 책 읽거나 아이패드로 동영상을 보며 지내고 있다. 주말에는 도쿄 여기저기 동네를 산책하며 기웃거리고 가끔씩 근교 여행도 가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작년부터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아들과 식사를 하는 것 외에 거의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그래도 심심하거나 따분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뒤늦게 자취생활을 하다 보니 애로가 많긴 해도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건강 관리에는 무엇보다 신경 쓰고 있다. 1주일에 서너 번 이상 달리는 루틴을 거의 15년 이상 지속하고 있고 최근 수년간 일평균 걸음 수도 최소 1만 4 천보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보니, 나머지는 결국 스트레스 관리 외에 먹는 것으로 귀결된다. 평일 점심 외에는 외식을 가급적 삼가고 직접 요리를 하여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벗어나 내가 하는 생각이나 실제로 쓰는 시간의 많은 부분은 장보기나 요리와 관련된 것이고, 건강한 음식과 함께 운동 후 마시는 한잔의 술이 최고의 소확행이다. 원래부터 소소한 일상 속 행복 추구자였지만, 도쿄에 와서 혼자 생활하며 이런 성향이 더욱 짙어진 것 같다. 그야말로 ‘별일’ 없는 소박한 일상 속에서 취하는 재미와 의미로 매일 조금씩 성장하며 단단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은 비록 자유로운 고독을 즐기고자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영원히 이렇게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살면서 심심하다는 게 뭔지 모르고,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지만, 휴일이 긴 골든위크나 연말연시 시즌에는 솔직히 외롭다. 잘 알려졌다시피 바닥 난방이 안 되는 일본의 겨울 집은 추운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신정 연휴엔  마음도 조금 추웠다. 이럴 때 내가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저 일상의 루틴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부터 시작된 5일 연휴 내내, 종이책 및 이북을 통한 독서, OTT로 영국과 일본 드라마 시청, 유튜브나 팟캐스트 들으며 달리기와 산책, 약간의 투자 공부, 메모 수준의 일기와 짧은 기도, 요리와 혼술 그리고 매일 아내와 딸과의 페이스톡의 반복이었다.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양희은 선생님의 <그럴 수 있어>와 카트린 지타의 <내가 여행하는 이유>를 번갈아 읽으며 잔잔한 울림을 받았다. 엊그제 저녁엔 뜨끈하게 김치찌개 끓여 반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한 후, 살짝 오른 취기에 평소엔 즐기지 않는 트로트곡 몇 곡 들으며 나도 이제 이런 노래들을 듣는 나이가 됐구나 하는 상념에도 잠겨봤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넘치는 잡스러운 생각을 글로 정리하며 연후의 끝, 짧은 외로움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엔 뭔가 더 큰 꿈과 포부를 가져야만 할 것 같아서 ‘소소일상주의자’로서의 내 모습을 마냥 좋아하지 못했다.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 특히 서울의 동생집에 계시는 팔순의 홀어머니 생각을 할 때면, 나 혼자만 ‘소확행’ 타령하고 있는 것 같아 복잡한 심경이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내 삶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이 그저 무탈하고 평온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갈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별일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별 일이 없어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별 일이 없어서 오히려 행복하고 고마운 삶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도 별일 없기를, 모두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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