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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Feb 23. 2024

내가 도쿄로 온 이유

자유로운 고독을 찾아서


이래저래 다 합치면 일본에서의 생활도 5년을 넘어가고 있다. 역사와 정치문제에 있어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고 스포츠 경기에서도 결코 지고 싶지 않은 상대국이지만, 굳이 밝히자면 나는 지금처럼 도쿄에서 사는 게 좋다. 일하고 생활하는 데 일본이 왜 좋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무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사람들 간에 적당히 거리감이 유지되고,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또 비교당할 필요도 없어서…

그렇다. 일본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으면 자기의 속도로 자신만의 취향대로 살기 좋은 나라이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산전수전 다 겪은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하고 있는 나의 특수한 상황도 있기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일반화하기에는 많이 주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고도 단언할 수 있다. 일본의 회사에서는 조직의 큰 전략방향과 실적목표에 따라 자기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사내정치 신경 쓸 필요 없이 인간관계 파탄 나지 않을 만큼만 최소한의 동료애를 유지하면 좋지만, 그마저도 굳이 사람들과 엮이는 게 싫다면 조직생활에서의 매너를 지키며 성과만 잘 내면 된다고. 회식 등의 자리도 일의 연장이 아닌 그야말로 마음 내키는 대로 참석할지 말지를 정하면 된다고. 결국은 회사를 가족처럼 여길 필요도 없고 굳이 원하지 않으면 회사 동료들과 친해질 필요도 없다고. 이게 내가 일본에 와서 일하고 있는 이유이고 지금 내 삶에 만족하는 까닭이다.

아자부다이힐스 어딘가에서 공간미가 좋아서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은 한국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살가움’이 생각난다. 바로 부친 동태전이나 빈대떡에 마시던 퇴근 후 막걸리 한잔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시끌벅적한 삼겹살집에서 소주잔 부딪히며 웃고 싸우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냉철하게 돌아보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내 스트레스 원인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사실은 그다지 인간관계에 능숙하지도, 조직생활을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팀장이 되고 임원 역할까지 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깜냥에 비해 책임감과 욕심만 커서 회사 내 인간관계 관리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업계 교류까지 동분서주하다 보니, 어딘가 모르게 늘 마음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개인보다는 단체/가족/조직을 앞세우는 한국의 문화에서 열심히 하면 할수록 뭔가 모를 늪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나의 소심함을 원망하면서도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라도 표류되고 싶었다.


당연하지만, 모든 면에서 일본에서의 생활이 한국보다 더 좋은 것은 물론 아니다.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또는 일본의 공공서비스를 받다 보면 답답하고 바보스러운 모습들이 엄청 많다. 그렇지만 도쿄로 복귀 후 1년 남짓, 아직까진 며칠에 걸쳐 밤잠을 설치게 할 만큼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은 없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생활하며 터득하게 된 적당히 관조하는 자세와 고난을 견디는 마음의 근육이 튼튼해진 결과일 수도 있다.


일본이라는 ‘섬’으로 이주해 오면서 한국에서 누리던 지위와 권력은 많이 내려놓았지만, 그 이상 마음의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찾은 느낌이다. 악착같이 노력하며 붙들고 있던 허상과도 같은 인간관계가 자연스레 소멸되었고, 그야말로 평생볼 사람들과의 찐하지만 ‘힘 뺀’ 교류만 남았다. 아이들 둘 다 성인인 덕에 비교적 가볍게 혈혈단신 일본 근무를 결정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나를 이해하고 쿨하게 보내준 와이프와의 유대감(?)은 훨씬 더 강해진 느낌이다. 이 모든 게 자유로운 고독의 힘이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빼고는, 혼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삶의 유연함과 여유로움을 얻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일본이 아니어도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이 있었기에 이런 삶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더 일본에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종국에 가서 선택은 내가 하겠지만,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니. 언제부턴가 먼 산을 보기보다 발밑을 살피며 걷고 있다. 몇 년 후의 일보다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지 이번 주말에 어딜 갈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역시 어쩌면, 물가와 임금의 변화 없이 지난 30년 세월을 무심하게 살아온 일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자세에서 보이지 않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소확행’이란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달관의 소치일지 몰라도, 일본에 있는 동안, 나도 그들처럼 소박한 일상 속 작은 성취와 설렘을 안고 충실한 하루를 살아가는 ‘소확행’ 주의자로서 살고자 한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더 이상 남들 관심도 받고 싶지 않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걱정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온기만은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게 일본에서 자유로운 고독을 만끽하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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