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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Jun 01. 2024

인생은 평균회귀

마음이 번잡할 때 삶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어머니

내가 좋아하는 통계학 용어가 있다. 평/균/회/귀/ 데이터를 관찰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흩어진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표본이 쌓일수록 일정의 평균에 근접하게 된다는 것으로, 어떤 극단적인 경우도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평균에 수렴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치열하게 한 주를 보내고 난 주말 아침, 6킬로 정도 달리며  몸과 마음의 디톡스를 했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번뇌의 찌꺼기가 남아있다고 느낄 때면 ‘평균회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평균회귀(mean reversion)는 일단 학문적으로 흥미로운 개념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함에 있어 시장이나 해당 기업/물건의 펀더멘털에 크게 변함이 없는데도 가격이 이동평균선을 과도하게 벗어난 경우, 이때를 주식이나 부동산의 매수 타이밍으로 잡는 것은 전형적인 ‘평균회귀’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자주 취하는 전략이다. 유명 스포츠 잡지 표지에 실린 운동선수의 다음 해 성적이 저조할 확률이 높다는 식의 실제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도 많다. 우리 실생활에서도 시험성적, 날씨, 체중 등이 얼마나 평균회귀적인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평균회귀는 또한, 살다 보면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삶의 법칙이기도 하다. 올라가면 내려오게 되어 있고,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단순한 맥락이다. 이러한 진리에 가까운 법칙이 지나고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적확한 인생의 지혜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누구가 한 번은 겪게 된다. 역술가들이 흔히 말하는 ‘대운이 오기 전에 가장 힘든 일들이 생긴다’는 얘기는 특별히 ‘신끼‘가 없어도 지난한 삶의 굴곡들을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지는 ‘평균회귀’의 철학을 담은 수많은 속담이나 격언들 덕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의 순간들을 현명하게 대처하며 또 하루를 살아 낼 힘을 얻곤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 중 하나로 심신이 고단하고 마음이 일렁일 때 많은 위로를 주는 찰리채플린의 통찰 역시 이러한 평균회귀에 입각한 삶의 자세를 잘 전달하고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평균회귀의 관점에서 서울에 계신 늙으신 홀어머니를 떠올러 본다. 그야말로 평생 고생만 하시고 돈 한번 펑펑 써 보지 못하신 분.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시는 생활습관 덕에 그나마 남들 다 달고 사는 지병하나 없다지만, 이제는 허리며 다리며 불편해 보이시는 게 역력한데도 늘 아픈데 하나 없다고 걱정 말라고 하시는 당신의 80년여의 삶은 평균적으로 행복한 인생으로의 수렴과정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무리 봐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같은 삶의 이동평균선을 벗어나는 일들이 평균보다 훨씬 많이 발생했던 어머니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남편 일찍 떠나보낸 후 잔병치레 끊이지 않던 자식 뒷바라지하고, 믿었던 이웃집 보증 잘못 서서 십수 년 고생해서 모은 돈 거의 다 떼이고, 또 어렵게 다시 모은 돈 모아 사놓은 땅은 팔리지도 않아 아직도 집 한 칸 없이 세 살이 하고 계신 우리 어머니. 연로하신 노모를 서울에 두고 해외에 나와서 일하다 보면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측은지심과 장남이지만 효자라고 할 수 없는 자괴감이 문득문득 나를 괴롭힌다. 어머니의 자식에 사랑과 헌신 덕에 나는 정작 남들보다 높은 삶의 평균치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어머니의 삶은 반대였을 거라 생각하면 남은 여생 내가 더 잘해드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어머니가 남은 여생 그저 건강하시고 마음 편안하시길 바랄 뿐이다. 어머니의 남은 여생, 평균치보다 더 잘하는 장남이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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