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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F AND ONLY IF Aug 01. 2019

새의 선물, 은희경

가벼운 삶에 대한 고찰


나는 늘, 인생을 진지하게만 바라봐 왔다.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은 유연함을 잃고, 깔끔하긴 하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렸던 것이다. 진지한 사람은 으레 자신이 지나치게 진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나치게 진지한 부류는 아니기를 기대하고 있다. 허나, 나는 내가 만족할 정도로 가벼운 사람은 결코 되지 못했다. 나는 가벼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고통을 가볍게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가벼운 삶 속에 숨은, 강인함이 갖고 싶었다.


내가 가벼운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은, ‘가벼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과 마음의 불일치란 꽤나 흔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그랬던 나에게, 이 소설은 가벼운 삶에 대한 힌트를 살짝, 보여주고는 덮어버렸다. 


이 소설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시골 풍경을 정말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숙집, 장터, 변소 등등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임에도, 마치 그림을 보는 듯했다. 매 장면이 각자의 생동감을 머금은 채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배경 묘사 덕분에 끝까지 잠시도 몰입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작품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삶의 통찰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전적으로 공감되면서도, 그것이 실로 가차 없이 삶의 허위를 도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웃지는 못하되 조그맣게 터져 나오는 진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마치 몰래 만화책을 읽을 때처럼 말이다.


치밀한 배경 묘사와 재치 넘치는 통찰력, 그리고 흥미로운 주변 인물들도 좋았지만,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진희의 성장 그 자체였다. 진희는 소설 초반부부터 조숙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진희에게도, 성장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음을 나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야 뒤늦게 알아챘다. 진희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예전에 작성한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의 목록을 발견한다. 당시 진희는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삶 속에 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믿을 것이며 그 믿음을 배반당함으로써 상처를 입겠냐는 생각으로, 그런 목록을 적고서는 무엇인가를 믿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진희는 자신이 그때까지만 해도 삶을 꽤 심각한 것으로 여겼음을 깨닫고, 그 목록을 다 지워버렸다. 조숙했던 12살 소녀 진희는 어쩌면 그 순간부터 ‘냉소’로써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삶을 살아내는 법을 터득한 것이 아닐까.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는 법. 나는 늘 그것을 구하고자 했다. 진희의 모습에서, 그런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냉소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하지만, 냉소에는 막연한 쓸쓸함이 늘 함께한다. 다 자란 그녀의 모습 속에서, 나름 성공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음에도 어딘지 무언가를 잃은 듯한, 분명한 공허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리라. 자신을 두고 정신병으로 스스로 죽음을 택한 어머니,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의 존재와 이로 인한 타인들의 시선이 늘 어린 진희를 따라다녔음을 생각해 본다면, 비상한 머리의 그녀가 가장 먼저 터득한 것이 ‘냉소’ 일 수밖에 없음에 공감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남는다. 작품에도 언급되어 있듯, 상처의 내압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먼저 깨우친 것이 차가운 웃음이 아니라 따뜻한 웃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삶의 허위에 비웃음을 보내는 대신 그마저도 미소로 포용할 수 있는 관용, 삶에 속고 상처 받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는 대담함이야말로 그녀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녀는 단단해졌을지언정 강인해지지는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나도, ‘삶은 농담인 것이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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