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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Nov 17. 2019

낮에는 화가 나고 밤에는 미안해

자는 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꿈을 꾸는 건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입술을 쭉 내밀거나 입맛을 다시 기도 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주다가, 아까 낮의 괴물 같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미안해. 놀랬지? 엄마가 잘 못 했어.”

몇 번이고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눈물, 콧물 범벅으로 어둠을 보내는 날이 반복되었다.



종일 에어컨을 틀어도 축축 처지는 8월, 아이와 마당에서 뛰어놀다가는 쓰러질 것 같았다. 친정엄마네 며칠 가 있자니, 거긴 에어컨이 고장 난 상태라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전염병이 돌고 있어, 키즈 카페조차 가기가 꺼려졌다. 뙤약볕 아래, 테라스에 설치한 수영장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박박 닦았다. 호스로 물을 가득 받기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

 “엄마, 빨리! 빨리!” 옆에서 재촉하는 아이가 얄미웠다. 욕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1시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밥 먹이고 입씨름하다 둘러보면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커피만 내리 마시고 밤을 맞이하는 반복된 하루였다.      



갑자기 아이가 잘 놀다가 떼쓰기 시작했다. 조금씩 쌓여서 곪은 내 안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갈라지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엄마 미치는 꼴 볼래! 나한테 왜 그래 정말! 제발 그만 좀 해!”

집 전체가 울릴 만큼 우악스럽고 굵은 소리였다. 괜한 짜증을 내던 아이를 향해 싸늘한 눈빛을 쏘았다.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벌벌 떨면서 구르고 울었다. 그런 모습에 아이는 놀랬는지, 가만히 바라보다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내 머리를 반복해서 세게 쥐어박았다. 얼얼한 머리보다 더 아팠던 건, ‘너 이것밖에 못 하니’라고 자책하는 마음이었다. 스스로 머리를 때리면서 반성했다는 자체도 충격이었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인데도, 아이의 작은 울음과 짜증에 달궈진 쇠처럼 달아올랐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내 그릇은 이만큼 밖에 안 되는 것 같아 좌절하고 실망하기 일쑤였다. 노력은 죽어라 하는데, 결과는 계속 그 자리인 인생 최대의 관문을 느리게 통과하는 중이었다.

 


혼란 속에서 바라본 아이의 울음과 떼가, 마치 나의 모자람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이 느껴졌을 거다.

감정 조절 하나 못해, 스스로 상처를 냈다. 그 상처는 분노로 변해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건너갔다. 막힌 마음을 어디에서부터 풀고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전전긍긍 ‘따뜻하고 친절한 엄마’로 겨우 잘 지내 온 것 같은데, 만만한 약자인 아이에게 그 분노를 쏟아내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그간 쌓은 노력이 우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소리 지르다가 차분해지고, 울고불고하다가 친절한 두 얼굴의 엄마. 한마디로 내 육아는 망했다 싶었다.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꼭 붙어 모든 것을 함께 했다. 아이의 밥을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나면 밥맛이 뚝 떨어졌다. 화장실 갈 때도 예외 없이 아이는 내 무릎이나 어딘가에 찰싹 매달려 있었다. 작은 침대에 같이 누워 재우느라 몸이 반쯤 접혀 있었고, 반가운 전화 통화도 방해하는 아이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둘은 일대일 세트, 그 사이에서 나라는 사람은 희미해졌다. 엄마가 되기에 당연히 거쳐야 할 일이라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것 같았다. 온종일 아이에게 맞춰져 있는 촘촘한 시간 틈 사이로 나만을 위한 찰나가 절실했다.



나를 위한 순간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를 재우고 ‘반성의 시간’이 아니라, ‘내 편의 시간’을 말이다.

매일 채찍질하다가 마음먹고 스스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먼저 엄마로서 자신 없는 이유를 물었다. 항상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고, 말끔한 머리와 옷차림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집에 놀러 왔던 친구라면 엄마표 간식을 떠올릴 만큼 정성스럽게 챙겼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도전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완벽한 그녀였다.

감사하게도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랄 수 있었지만, 난 그렇게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우기엔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부모 역할은 자신 없는 분야라 선을 그었으나, 어느샌가 정신 차리고 보니 엄마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인정하려 한다.

완벽한 엄마란 있을 수 없고, 애초에 난 완벽할 수 없는 허술한 사람이니까.

내 그릇이 요만큼이라면 이 안에서 마음껏 찰랑거려도 돼. 더 넘치고 싶어 다그치지 말고, 더 넓혀서 쩔쩔매지도 말고.

내게는 높기만 했던 좋은 엄마의 기준을 서서히 허물고, 인정하고 믿는 마음으로 채워가는 중이다.

앞으로 수많은 관문을 통과하고 돌발상황을 헤쳐나가야 하겠지만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고 싶어졌다.



새벽 두 시쯤, 문득 혼란이 찾아올 때가 있다. 막막해서 갈피를 못 잡겠다고,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 싶어 움츠러드는 날. 자는 아이 뺨에 볼을 슬며시 맞댄다.

익숙하고 따뜻한 냄새, 땀 냄새, 딸기 치약 냄새, 로션 냄새와 함께 말랑말랑한 살과 쌕쌕 자는 숨소리까지 더해져 뭉클한 위로로 다가온다.


“미안해” 대신 나지막이 내뱉는 말.

“엄마 푹 잘게. 그리고 일어나 조금 더 나를 사랑하는 내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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