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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Nov 17. 2019

사랑꾼 아들에게

아들의 두툼하고 작은 입이 오물오물 움직인다.

입에서 나는 달큼한 냄새를 맡으면 자연스레 입을 맞추고 싶어진다. 내가 재빠르게 뽀뽀하면, 아이는 손으로 입을 쓱 닦고 쳐다본다.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대하며 입가에 웃음기 가득한, 다섯 살 꼬맹이다.

 이 꼬맹이는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잘 때까지 쉴 새 없이 조잘거린다. 친구와 있었던 일, 로봇, 자동차, 감자튀김 등등 장황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평소와 다르게 기운이 쪽 빠진 모습이었다. 소파에 다리를 쩍 벌리고 누워 있는 아이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근데 비밀이에요.”

대답하는 아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항상 떠들다가 늦게 자던 녀석이, 자기 전에 하는 책 읽기도 건너뛰고 일찍 자겠단다. 불 끄고 방안이 깜깜해지자, 아이는 망설이다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엄마, 아까 비밀 알려줄까요?”

혹시 친구와 싸웠나, 선생님께 혼났을까, 다쳤나 온갖 걱정이 들었다. 망설이는 입에서 ‘소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새 학기가 되고 유난히 좋아하던 여자 친구‘소이’가 다른 남자친구 뺨에 뽀뽀를 해주더란다.

“소이가 재미있는 친구를 좋아하나 봐. 나도 잘 웃길 수 있는데.”

시무룩한 얼굴을 보며 상상하니, 엉덩이를 흔들던가 흰 눈동자만 보이게 치켜뜨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을 거다. 안 보아도 그려져, 아들아.



아침엔 소이가 “나 주원이 좋아. 주원이랑 놀래.”라더니, 오후 간식 시간이 지나자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를 듣다가 불쑥 화가 났다.

우리 아들의 기분을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여자아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 단체 사진에서 손가락으로 찍어 보라 했다. 응? 귀엽네. 하얗고 작은 인형 같아서 눈에 쏙 들어오는 아이였다.

문제는 동네 친구 세 명이 같은 반인데, 다들 ‘소이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집에 오면 내내 소이 이야기를 할 만큼, 제일 인기 있는 여자친구인 셈이다.     



어린이집에서 딸기 농장으로 소풍을 가기 며칠 전부터, 주원이에게 “이건 기회야”라며 누누이 말해 주었다. 딸기를 따서 먹지만 말고, 아무 말 없이 소이에게 딸기를 따서 건네주면 기뻐할 거라는 꿀팁을 말이다.

그러나 소풍 다녀온 아들의 표정은 영 껄끄러웠다. 사진을 보니 아들 입이 새빨갛다. 예상대로, 따서 먹기에만 열중하다 왔네. 그녀에게 딸기로 가득 채운 바구니를 준 다른 남자친구도 있었단다.

아들은 침대에서 뒹굴며, 야옹이 인형 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지금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뜻, 내가 왜 딸기만 먹었을까 생각 중인 얼굴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는 관심 없어 보이고, 잘 보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의 답답함, 다른 이와 더 가깝게 지내는 걸 보는 속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다섯 살 아들은, 조금씩 자기만의 감정과 방식을 배워 나가는 중이다.



이 문제는 나도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것 같아. 상대의 말과 행동에 상처 받는 어른이니까 말이다.

관계에 대해 초연하기보다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도 있는 엄마라, 시원하게 “신경 쓰지 마!”라고 해주지 못했다.

아이 눈높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할까. 마음 다치지 않는 방법은 뭘까.      



이후로도 쭉 여자친구 소이의 말 한마디로, 아이의 기분이 정해졌다. 어떤 날은 하원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입이 찢어져 있고, 다음날엔 기가 팍 죽어서 온몸에 힘이 없단다. 20Kg가 나에게 안겨서 집으로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알 수 없는 꼬맹이들의 애정 전선, 은근 중독성이 있어 계속 듣고 싶어진다.




밤 10시, 침대에 꼭 붙어 누웠다. 아이에게 간질간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검은 눈동자는 나를 향해 반짝이고, 얼굴의 작은 솜털마저 집중해서 듣는 느낌이었다.

 “엄마도 살아오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신감은, 나를 ‘사랑해’ 하는 거야.) 슬퍼서 울었었어.

그런데 어른이 되니까 알겠어. 가까워질 사람이 어디엔가 있을 뿐인 거야.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고, 그 친구가 다른 친구 누구랑 잘 지내나 지켜보는 대신 엄마가 좋아하는 걸 했어. 그러다 보면,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생기기도 해.”



아이의 눈은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다가 점점 감겼다. 쌕쌕 숨소리와 함께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잠옷이 올라가 살짝 보이는 배를 다시 덮어주고,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다가 나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씩씩하게 보고했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블록 놀이 하면서 혼자 잘 놀았어요.”

 하루 뒤에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나 이제 소이 말고, 예린이 좋아해요. 예린이가 나 좋아한대.”



이런 아들을 보고 남편은 사랑 꾼이라며 웃겨 쓰러진다. 자기가 못해본 꿈을 대신 이루라며, 많은 이성을 만나보란다.

애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며 눈을 흘기다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킥’을 연속으로 할 만한 유치 찬란한 애정들. 사랑으로 쳐주기엔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지하고 애달팠을 거다.      



앞으로 펼쳐질 아들의 사랑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기를. 행여나 내 마음을 거절당한대도, 흔들리지 않을 내면의 힘이 쌓일 날을 기다려 본다.

그때가 되면. 자기만의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을, 나보다 키가 한 뼘은 훌쩍 커 있을 아들일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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