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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Mar 16. 2020

코로나때문에  미뤄진 출국은 다행이었다.

다만, 살 집이 없다는 것 빼고는

*출국 전 이야기 1*


갑자기 잠에서 깼다. 잠결에 실눈을 뜨고 침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결혼 전 내 방인데? 꿈인가?' 정신을 차리며 옆을 보니 땀을 흥건히 흘리며 곤히 자는 아이가 보였다. 꿈은 아니었다. 새벽 차가운 공기에 코가 시리면서도, 등과 엉덩이는 뜨거운 열기에 달아올라 있었다. 온수매트 온도를 한껏 올려주고 방을 나가는 친정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방 한구석에 세워둔 세 개의 캐리어가 어둠 속에서도 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덩치 큰 캐리어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12월, 남편이 중국 주재원으로 발령 받았다. 내 책이 이제 막 나왔고, 아이는 어린이집과 동네 친구와의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였다. 막연하게 낯선 나라의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남편만 보내고 아이와 둘이 지낼까, 아니야 아니야, 집은 어쩌지, 글 쓰는 직업에 다시 도전하려던 목표는 사라지는 건가, 또다시 긴긴 경력단절이 생기다니, 중국어는 내가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던데, 아이가 국제 유치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헤어지기 싫은 내 인연들, 그곳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겠구먼, 가기 전에 준비할 것들 많을 텐데, 아 머리 터져 뒤져......'




남편 출국일이 정해졌다. 나와 아이는 남아 뒷정리를 하고 뒤따를 계획이었다. 준비할 서류부터 국제 이사까지 혼자 감당해야 할 몫. 마음만 급해졌다. 급기야 '중국어는 일단 가서 배우자'라는 깡까지 생긴 채, 조금씩 해야 할 목록을 지우고 있었다.





갑자기 터진 코로나 바이러스. 이 바이러스 때문에 출국이 미뤄졌다. 그 난리통에 출국할 남편 걱정에 신경이 곤두선 터라, 기약 없는 출국일은 다행이었다.

다만, 살 집이 없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계획대로 우리는 떠난 상태여야 하고, 빈 집에는 세입자 가족이 들어와야 했다. 계약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 언제 출국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을 비웠다. 국제 이삿짐센터가 오기 전 날, 겨울 내내 씨가 말라있던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내일 동네 전체가 꽁꽁 얼어서 이삿짐 차가 못 올라오는 거 아닐까?' 은근한 기대를 하며, 느릿느릿 짐을 싸고 정리하다 밤을 꼴딱 지새웠다.




텅텅 비어버린 우리 집, 스윽 둘러보고는 아쉬운 마음에 문을 살살 닫고 나왔다. 한 시간 뒤, 캐리어 세 개를 달달 끌고 친정 엄마 집 벨을 눌렀다. "할머니, 주원이 왔어요!"

아이 목소리가 아파트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 앞으로 여기에서 몇 달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 '봄, 설마 여름까지?' 그 와중에 고심해서 캐리어에 챙긴 트렌치코트가 생각났다.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올 찰나, 현관문이 삐릭 열렸다.


내가 여덟 살 때부터 스물아홉까지 살았던 그 집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낯선 거야. 달리 느껴지는 공기를 들이마셨다. 나도 모르게 캐리어 손잡이를 쥔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바퀴가 스르륵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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