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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영 Sep 07. 2019

VVI II

볼리비아는 남미 국가 중에 유일하게 입국 전 비자를 준비해야 하는 나라다. 미국 들어갈 때 필요한 ESTA 비자처럼 간단하게 인터넷만으로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출장 비자의 경우, 인터넷 사전 비자신청서, 여권, 여권사본, 여권사진 1매,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 사본, 본인 명의 통장잔고증명서(영문), 범죄 수사경력 회보서(영문)를 준비하고 대사관 홈페이지에 공지되어 있는 계좌로 인지세 85불을 입금한 후 입금확인증을 준비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볼리비아는 참 어렵게 갈 수 있는 나라다.


게다가 볼리비아 대사관 비자담당 여직원들이 같은 한국사람들끼리임에도 하나같이 무서운 눈과 무서운 말투로 쏘아붙여서 기싸움에서 지면 곤란해진다. 그나마 예전에 의정부에 있던 대사관이 시청으로 자리를 옮겨 다행이다.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덩치가 스모선수처럼 엄청 커서 모두들 스모라고 부르던 분 기억하나요? 안경도 꼈었는데..”


볼리비아 들어가는 비행기는 하나같이 새벽 1-3시에 도착한다. 그럼에도 늘 한결같이 공항에 마중 나오던 바이어 회사 부장님(사실 직함을 잘 몰라 편의상 부장님이라 칭함)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지 몇 년 됐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사장님은 20년도 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었다.


“아 최근 당뇨합병증이 왔어요. 집에서 요양 중입니다. 곧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몰라요.”


돌아온 바이어의 대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부장님은 영어를 할 줄 몰라 미팅 자리에는 잘 합석하지 않았지만, 미팅 후 저녁식사나 술자리에 우리 일행을 항상 에스코트하던 분이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음날 바이어의 도움으로 부장님과 영상통화를 했다. 화면 너머 부장님은 핸드폰으로 붕대를 감고 있는 자신의 다리를 보여줬다. 곧이어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우리 회사 사장님도 마찬가지.. 옆에서 지켜보니 친구들끼리만 20년 우정이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통화를 끝내고 사장님이 한 말씀하셨다.
“이제 스모를 또 언제 보겠니. 코스타리카 바이어도 당뇨로 저렇게 악화되다 떠났는데.. 나도 이번이 마지막 남미 출장이 되지 싶다..”

20년 세월 바이어 회사와 꾸준히 일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일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미팅 끝나고 돌아온 호텔방에서 부장님과 함께한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베르너 토마스의 <자클린의 눈물>을 들었다. 부디 무탈히 쾌차하시길..

출장 세 번째 주 볼리비아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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