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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Oct 03. 2022

아버지의 식탐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마음이 고픈 거였어.

지난번 한국에 방문했을 때 아버지가 유독 음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도 이상할 것이 나이는 이미 환갑이 넘으셨고, 안 먹어본 음식이 없었을 텐데 왜 이리 음식에 집착하는 것일까?


누가 자신에게 주지 않을까 봐 빨리 먹고

남동생이나 조카를 위해 남겨놓은 것까지 먹는 아버지.


누가 보면 가난한 집에서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아버지 나이에 집 한 채는 마련해 두셨고 부채도 없으며 넉넉한 음식을 먹을 정도로는 살고 계신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음식에 집착하는 것일까?

나는 사람들이 어떠한 특정한 행동을 오버해서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과거의 기억과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나 스스로를 치료할 때마다 자주 관찰하던 나의 모습이니까.


아버지를 유심히 관찰해봤다. 나는 전쟁 직후에 가난한 환경에서 5남매끼리 먹을 것에 집착하고 경쟁하듯 먹어야 하는 기억 때문인 줄 알고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지만 그것은 또 아니라고 하신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예전에 이렇지 않으셨다. 우리가 독립하기 전에는 밖에서 일하고 온 사람은 아버지 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 위주로 식사를 차려드리고 편히 쉬실 수 있게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남동생이 이혼을 해서 조카를 데리고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니 어머니의 관심은 어린 조카와 아픈 손가락 같은 동생을 더 챙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모든 관심이 아버지로부터 동생과 조카까지 분산되니 아버지는 그것을 먹는 것으로 표현하셨다. 어머니가 동생과 조카에게 따로 요리해둔 것까지 손대고 어린 조카 위주의 요리를 하면 툴툴 되기 시작하신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철부지 어린애처럼 구는 아버지가 못마땅하시다. 하지만 온통 본인 위주였던 관심이 자식과 손주까지 분산되는 것이 내면에서는 못마땅하신가 보다. 어머니가 아버지 식탐 때문에 감춰뒀던 음식이 발견되면 그렇게 서운하고 섭섭하신가 보다. 60이 넘은 부모님이 이런 거 가지고 실랑이한다는 게 너무 이상한 일이지만 그 덕분에 아버지의 내면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평생 우리에게 어떠한 애정표현도 하지 않으셨다. 칭찬과 격려보다는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나이가 들어서 유해지셨지만 나는 정말 힘든 10대 시절을 보냈으니까. 


그렇다 보니 아버지의 부모님, 즉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해봤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농사를 지으셨는데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볼세 없이 마루에 갓난쟁이 애들을 눕혀 놓고 농사일을 가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형제자매들도 그랬을 것이다. 너무 가난하고 그 아이들을 돌볼 사람들이 없으니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표현을 배워본 적도 없고 표현할 줄도 모르신다.


그 마음에 생긴 구멍이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대접에서 사랑을 채우는 기분이 드셨던 것이고 이 사랑이 자식과 손주로 가는 것조차도 못 견디시는 것이다. 


역시나 한번 생긴 감정은 풀어주지 않는 이상 60살이 넘어도 평생 간다. 그러니 나를 잘 아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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