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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Sep 29. 2022

키키는 정말 행복을 배달해주었다

나의 고양이 키키 이야기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20대 내내 고양이가 너무 키우고 싶었지만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너무도 큰 결정이었기에 항상 망설여지게 되었다.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어미 고양이는 약한 새끼 고양이를 그냥 버리고 떠나는데 어느 날 출근길에 비상계단에서 목놓아 울던 맥주색(?) 고양이 두 마리를 구조하게 된 것이었다.


정말 살기 위해 목이 쉴 정도로 빽빽 울던 아깽이들은 눈에 염증이 있어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는데 카스와 맥스라고 이름을 지은 후(맥덕인 저를 이해하세요) 한 달 동안 정성스럽게 치료를 해준 뒤 새로운 가족들에게 입양을 해주었다.


그때 이후로도 고양이를 너무나도 키우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려본 시골집 고양이 쉘터에서 병든 고양이와 개체수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고양이들을 구조센터에 보내기로 되어있었는데 그중에 내 눈에 띈 것이 키키였다.

처음 키키가 집에 왔었을 당시

키키의 이름을 지을 당시 호주인들은 사람 이름으로 동물 이름을 많이 지어서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정말 많이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입에 착붙하는 이름은 키키뿐이었다. 

키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마녀들은 13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전통이 있고, 마녀가 없는 새로운 마을을 찾아 그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며 정착해야 한다. 13살이 이 모든 것을 해치고 나가는 게 쉽지 않지만 정말 '씩씩하게' 이 과정을 모두 헤쳐 나간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징징 될 법도 한데 집을 얻는 과정도 배달을 하는 일도 그리고 잃어버린 고양이 인형을 되찾는 일에 청소를 하는 일도 정말 씩씩하게 해낸다. 나는 그런 키키가 너무도 좋았다.

이렇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키키는 정말 씩씩하고 용맹한 고양이로 잘 자라고 있다. 조만간 4살 생일을 맞이한다. 


그러다 문뜩 왜 내가 그 많은 애니메이션 중에 키키를 좋아하는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바로 나 자신이 투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마을에 와서 자리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나와 똑았았다. 걔다가 마을은 키키 자신이 살고 있었던 곳과 많이 다른 것도 있었다. 


혼자서 울지 않고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것도 나와 비슷했다. 결국엔 마음을 다치고 심하게 감기에 걸린 후 마법을 잃어버리는 모습도 내가 호주에 왔을 때 열정 하나만 가지고 온 모습과도 비슷했다. 이런 망할 미야자키 할아범 같으니라고(애니메이션 감독) 내 마음을 어찌 이리 쏙 알고 있는지. 나를 울릴려고 작정한거 같다.

내 마음을 알고 나니 키키가 어제와 달리 보인다. 나의 보물 키키야. 너는 나를 상징하는 다른 아름다운 고양이었던 거야. 내가 아팠던 순간 키키가 없었다면 그렇게 많이 웃었을 수 있었을까.

지금도 내 무릎에 착 붙어서 낮잠을 자는 사랑스러운 고양이. 나와 오래오래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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