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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바구니 Apr 04. 2021

흘러간 책도 다시 보자

<Obama and China's Rise> Jeffrey A.Bader

외교 분야 서적은 아무래도 '시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적었지만, 현재와 다소 시간적 거리가 느껴지는 책이라고 해서 반드시 의미까지도 덜하다고 할 순 없다. 지금의 외교정책이라는 것도 언제나 역사적 맥락을 지니기 마련이고, 과거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외교 접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책이 지닌 '시차' 덕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읽어낼 수도 있다. 수 년전 벌어진 일에 대한 서술을 접하면서 오히려 '지금 여기'를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어쩌면 역사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이치와 비슷한 것도 같다. 미국처럼 양당제가 확고하고 대외정책에서도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표방하는 가치나 방향이 대개 연속성을 띠고 유지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런 건 아닐까, 짧은 독서 이력으로나마 짐작해본다.



<Obama and China's Rise>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1기에서 아시아 정책을 담당한 Jeffrey A. Bader 라는 미국의 관료 출신 아시아 전문가가 2012년 쓴 책이다. 책이 주로 다루는 내용은 오바마 아시아 정책의 수립과 실행 과정, 아시아 정책 방향성 등이다. 중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국, 또 일본과의 관계도 언급된다.


그런데 미국 민주당이 4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2021년,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온 지점은 따로 있다. 책이 쓰여진 시점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또는 Pivot to Asia)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때이지만, 중국의 부상에 대한 낙관적인 정서가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향후 중국이 평화와 균형을 위협하는 세력이 아닌, 안정되고 건설적인 세력으로 성장한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립한다.
중국을 언젠가는 맞닥뜨릴 적으로 보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협력할 동반자로 인식한다.


책이 오바마의 대중국 전략 원칙으로 제시한 것 중 눈에 띄는 대목 한 두가지를 옮겨본 것이다. 물론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전제, 또 중국이 역내에서 평화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관여'를 통해 중국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당위성, 또한 미국이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 내지는 확신이 묻어나온다고 느꼈다. 어쩌면 중국 관여론이 성공하리란 낙관, 달리 말하면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제어할 수 있으리란 전제야말로 오바마의 중국 정책이 실패하게 만든 원인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중국의 실체에 대해서 지나치게 희망적으로 사고한 것은 아닐까. 결국 지금 조 바이든 행정부가 초기부터 '대중국 공세'에 열을 올리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중국과의 협상 등 외교 노력을 설명한 이 책의 여러 대목을 읽으면서 지울 수 없었던 생각들이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함으로써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또한 아태지역 거의 모든 국가들은 중국의 성장이 자신들의 안보 및 이익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이들 국가들은 미국의 강한 존재감이 있으면 과거 역사처럼 중국이라는 한 나라의 영향력에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p225)


위 대목 역시 '현재성'이 있다고 느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 등 역내 국가들에 가해지는 '선택 압박'은 매일같이 접하는 화두이다. 때로는 과장된 것일 수도 있고, 또 정부 당국이 늘상 말하는대로 '미중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2012년의 이 서술은, 약 10년이 흐른 지금은 한국에게는 외교적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전망을 물었을 때, 몇몇 베테랑 관료들은 이렇게 답했다. "오바마 시절을 한 번 잘 살펴보세요." 물론 바이든이 오바마의 정책을 답습할 것이란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에 몸 담았던 핵심 참모들 대부분이 그대로 귀환했기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바이든이 정통 외교에 다시금 힘을 싣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예측가능성'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날 리도 만무하다.


다만 바이든 정부 스스로도 오바마 정부를 레퍼런스로 삼고, 성과는 극대화하고 실패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분투할 것으로는 예상할 수 있다. 나 같은 관찰자로서는 짧게는 4년 전, 멀게는 12년전의 역사가 어떻게 변주되어 나타날 지를 지켜보는 일이 퍽 흥미롭다. 북핵 문제부터 미국이 우려하는 '중국의 부상'까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오래된 문제, 예견된 문제, 동시에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온 문제를 다루려 하고 있다.


그러니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듯이, 흘러간 책이라고 그저 흘려보내지 말자. 때를 다한 것 같은 책에서도 의외의 소득을 건질 수 있다. 책의 효용을 쉽게 재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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