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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Oct 21. 2019

밴드를 만들었다

일을 이벤트처럼





제주로 2017년 10월 초에 입도했다. 제주에 정착한 지 만 2년이 넘었다.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으니 세 번째 ‘귤 철’을 코앞에 두고 있다. 천혜향이니, 카라향이니, 황금향이니, 거기에 하우스 감귤까지 1년 내내 귤이나 만감류를 먹는 시절이니 어느 한 계절을 ‘귤 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제주 귤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 아닌가 한다.    


첫 번째 귤 철에는 일당을 받지 않더라도 귤 따기 체험을 해보고 싶어서 이곳저곳에 부탁을 해봤지만, 선뜻 나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그때는 일손이 부족하다는 철에 왜 아무도 일을 안 시켜주는지 의아했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나라도 ‘초짜’가 귤 따기 한번 해보겠다고 덤비는 건 달갑지 않다. 어쩌다 꼭지가 덜 잘린 귤이 섞이면 상자의 다른 귤을 찔러서 그 상장 안의 귤들이 썩어 나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품질과 신용에 직결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차라리 내 손으로 다 따는 게 낫다.     


두 번째 귤 철에는 운이 좋았다. 작년 여름에 같이 일하는 ‘여대표’와 청귤청을 담아 팔았는데, 무농약 귤을 거저 따가라고 하신 밭주인께서 도저히 다른 일이 바빠 귤을 따서 팔 여유가 없다고 우리에게 그 밭을 통째로 따서 팔고, 킬로당 얼마씩만 쳐서 달라고 제안을 해온 것이었다. 무려 1600평이었다. 여대표와 나는 겁도 없이 덥석 하자고 합의를 하고 일을 시작했다. 아무 경험도 없이 우리는 둘이서 그 밭의 귤을 한 달여에 걸쳐 땄다. 귤 따랴, 영업하랴, 택배 작업하랴. 녹초가 되는 매일매일을 전쟁을 치르듯이 지나갔다. 결국, 우리는 커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귤까지 세일가로 판매하는 것으로 완판을 했다. 무식해서 용감했고, 우리의 용감함에 고객들이 구매로 응원해 주신 것이다.    


그렇게 여름 청귤청과 1600평 귤을 완판 한 여대표와 나는 올봄에 800평의 버려진 귤밭을 무상으로 임대를 받았다. 칡넝쿨과 산딸기 넝쿨, 각종 큰 잡초들로 덮인 귤나무들은 숨을 쉬지 못해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여대표와 나는 남편들의 도움을 받으며 넝쿨들을 일일이 거두어 내고 힘이 닿는 데까지 마구잡이로 자란 귤 가지 전정을 했다. 5월에 귤꽃이 피었지만 다른 밭들의 30%도 꽃이 피지 못했다. 전정을 너무 많이 해줬고, 영양이 부족해서 힘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농사 콘셉트는 ‘토양과 사람에게 이로운 농사’다. 제초제와 농약을 주지 않고 최대한 자연의 힘으로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농사법을 지향한다. 기술도 없다. 다만, 자연도 아이를 기르듯이 보살펴 주고 기다려주면 된다는 소신 하나뿐이다. 겨우 귤을 몇 개씩만 매단 나무를 보면서 그래도 고맙고 기특해서 여름내 예초기로 풀을 깎아 주고 칡 덩굴과 산딸기의 뿌리를 호미로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그냥 하다 하다 다 못하면 내년에 또 하자는 생각이었다. 느리더라도 건강한 방법으로 가자는 것이 우리 모토니까.     






올여름 청귤청을 완판하고 9월이 다 갈 무렵, 여대표와 나는 오랜만에 귤밭에 갔다. 귤이 노랑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준비하는 시기. 입구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애들이 진초록 잎들 사이에서 용케도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잎사귀와 같이 초록일 때는 잘 몰랐는데 애들이 노랑물이 들기 시작하고 제법 알이 굵어지니 그 존재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우리는 작년 여름 청귤청, 작년 겨울 무농약 귤, 새해 설 선물인 한라봉 세트, 그리고 올여름 청귤청. 매번 준비하는 모든 상품을 완판 했다. 우리의 완판 소문이 났는지 주변 농사짓는 분들이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하신다. 하지만 우리의 기준은 명확하다. 건강하게 키웠는가? 즉 농약을 안 쳤는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친환경이 어려운 작물인 만감류(한라봉, 황금향, 천혜향 등)라도 최소한의 농약을 규정에 맞게 사용했는가? 즉, 저농약인가? 그 맛은 좋은가? 한마디로 까다롭다.     


우리의 실력을 보고 1200평 귤밭을 임대받은 무농약 귤 하시는 분이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주셨다. 그래서 올해는 작년보다 많은 귤을 따서 팔아야 할 거 같다. 물론 아직 최종 맛은 확인이 안 되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개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무농약으로 지은 귤의 맛은 다 훌륭하다.    


거기다 제주 감귤 여성 1호 마에스트께서 직접 지으신 황금향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셔서 11월부터 귤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황금향도 팔아야 한다. 팔 것들은 많아졌는데 언제까지나 지인 판매만 할 수는 없어서 사업자 등록도 했고, 네이버 밴드에 우리 #하여청 밴드도 만들었다.     




뚜껑을 열기까지 열흘이 남았다. 긴장된다. 하지만 이 또한 즐겁게 해내려고 한다. 이제 시동을 걸었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달리는 수밖에. 살면서 벌이는 일들을 이벤트처럼 집중적으로, 즐기면서 하자고 늘 마음먹는다. 자, 이제 올겨울 제주 #하여청의 황금향, 무농약 귤, 설 선물세트 이벤트 출발! 즐겁고 신나게!! 매일 귤을 따다 보면 살은 덤으로 빠진다. 일속 이조!!!





귤꽃이 피기 전에 앙상하기만 했던 우리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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