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원 Jun 20. 2022

류씨

실화기반 소설 시리즈 ep 1 (내가 참 좋아라 하는 사람) 

류씨는 어렸을 적부터 스트레스받는 지점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자꾸만 성의 ‘ㄹ’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흔히 ‘유’로 틀리게 불릴 일이 많았다. 사람들의 혓바닥이 그게 편해서 그런다나 뭐라나. 어려운 발음의 성을 가진 그는 종종 몰래 그런 사람들을 미워했다. 


류씨는 어렸을 적 수학 선생님한테 딱밤을 맞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인데, 약수를 배우는 과정에서 약분을 못 한다고 억울한 딱밤을 맞았다. 그 이후로 수학이 싫어졌다. 하지만 과학을 좋아해서 고등학교는 이과를 선택했다. 과학 연합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여전히 그는 수학이 싫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담임 선생님 과목이 수학이었는데도 말이다. 


류씨는 그림을 잘 그린다. 섬섬옥수의 손가락으로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우산 그리기를 멋지게 해낸 전적이 있다. 우산의 모양만 대충 그려내는 옆자리 조씨와는 다르게, 우산의 결 하나하나 표현하는 솜씨가 예술적이었다. 아마 그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을 거라고 미뤄 짐작할 뿐이다. 


류씨는 사는 동네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고등학교에 갔다. 동네의 인재를 키워내는 고등학교라나. 잘은 몰라도 친구 조씨는 그가 고등학교 타이틀로 얻는 명성을 부러워하고 기특해했다. ‘같이 공부 안 했는데 왜 쟤는 좋은 데 가는 거야.’ 궁시렁 대는 소리를 류씨는 듣지 못했다. 


류씨와 조씨는 언제나 수다스러웠다. 어딜 가든 깔깔거리는 못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기지 않은 일에도 퍽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해를 즐겼다. 혈관까지 매워지는 떡볶이를 먹으며 삶의 고통을 함께 삼키기도 했다. 


류씨는 언제나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길을 척척 알아서 개척해나가는 사람이었다. 두려워하는 티도 잘 내지 않았다. 자신감이 있거나 활발하거나 목소리가 크거나 근육이 많진 않지만, 조용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었다. 


류씨는 갑자기 아팠다. 누군가가 낸 상처에 크게 아팠다. 활발하진 않지만, 안정적이고 운치 있게 살던 그의 삶이 많이 피폐해졌다. 그는 어쩌면 아주 예전부터 조금씩 아팠을지도 모른다. 류씨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속절없이 찾아오는 새벽어둠에 숨어 눈물을 훔쳤을지도 모른다. 밥을 먹고, 약을 먹었다. 


류씨는 점점 본인의 페이스를 찾았다. 아픔이 영원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득했지만, 서서히 극복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성씨를 잘못 부르는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딱밤을 때린 수학 선생님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아픈게 점점 무뎌졌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면 불행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미워하는 마음은 어쩌면 사랑하는 마음이었고, 사랑하는 마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타인이 아닌 당신 본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발짝 내디디며 극복했다. 


류씨는 행복하다. 종종 조씨와 수다를 떨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귀여워하던 스티커를 사기도 하고, 가끔은 PC방에 가서 난폭한 게임을 즐기며 행복했다. 



@무원, 220619 성수동에서 쓰다. 

작가의 이전글 부지런한 여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