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그대들에게 고함

스포츠센터 '디지털판사(체중계)'의 관찰일지

by 배바꿈

나는 이 구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알몸의 아이돌'이다. 오전 7시, 스포츠센터 샤워장.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땀과 물기를 쫙 뺀 남자들이 나를 향해 줄을 선다. 다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내 위로 올라와 심판을 기다린다.


나는 하루에 수백 명의 엉덩이를 본다. 누가 진짜 운동을 했고, 누가 샤워만 하러 왔는지를 단 1초 만에 판결할 수 있다.


유형 1. 나르시시스트

저기 '김 근육' 회원이 온다. 그는 내 위에 올라설 때도 당당하다. 쿵! 그는 수건으로 몸을 가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다. 숫자가 [78.5kg]을 가리키자 만족스러운 듯 턱을 치켜든다.

"음, 근육량이 좀 늘었군."

그는 내려가지 않고 내 위에서 이상한 포즈를 취한다.

'이봐, 난 체중계지 전신거울이 아니라고. 네 광배근이 펌핑된 건 알겠는데,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봐서라도 제발 그만 내려가 줄래.'


유형 2. 닌자

저기 구석에서 눈치만 보는 '이 과장' 회원. 구두 뒷굽이 닳도록 거래처를 뛰어다니다 처음으로 운동화를 꺼내 든 그 남자다. 뱃살이 인격이라는 듯 두툼한 복부를 가지고 있는 그는 천적을 피하는 미어캣처럼 샤워장 주변을 배회한다. 내 반경 3m 안에 아무도 없는 찰나의 순간! 다다닥! 번개같이 내 위에 올라선다. 숨을 훕- 들이마시고 흉곽을 부풀리며 배를 집어넣어 보지만, (다시 말하지만, 배 넣는다고 무게 안 준다.) [95.2kg] 숫자가 뜨자마자 감전된 사람처럼 0.5초 만에 뛰어내린다. 그리고 주위를 살핀다.

'다 봤다, 이 사람아. 내가 봤고, 네 발바닥이 기억한다.'


유형 3. 음모론자

가장 피곤한 유형이다. 올라오자마자 인상부터 쓴다.

"아니, 왜 집보다 1.5kg나 더 나가? 이거 고장 난 거 아냐?"

'이보세요. 당신 집 체중계가 당신 기분 맞춰주려고 숫자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아니면 어제저녁에 먹은 소주와 삼겹살이 아직 네 뱃속에서 소화 중이라는 과학적인 사실은 왜 무시하나?'

그는 꼭 내 바닥을 툭툭 치고, 영점 조절 나사를 돌려대며 현실을 부정한다.

'여기 공용이다. 네 입맛대로 튜닝하지 마시라.'


유형 4. 환희의 연금술사

러닝머신 40분을 뛰고 온 청년.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올라온다. [71.0kg] -> [70.2kg]

"앗싸! 800g 빠졌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한다. 샤워장에 울려 퍼지는 승리의 함성. 미안하지만 찬물을 끼얹어야겠다.

'이봐 청년, 그건 살이 아니라 수분이 빠진 거라네. 나가서 음료 한 병 마시는 순간, 그 800g은 도루묵이 될 걸세. 지방 연소가 아니라 탈수 현상이란 말일세.'


오늘도 수많은 남자가 내 위에서 울고 웃는다. 습기 찬 샤워장에서 나는 냉정하게 붉은 숫자를 쏘아 올린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라. 당신들이 흘린 그 땀방울만큼은 내가 감히 잴 수 없는 노력의 무게라는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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