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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Dec 26. 2023

피부 트러블로 알게 된 마음의 과오

내 안의 보지 못한, 인정하기 싫은 마음을 찾다.

 피부가 뒤짚어진지 6개월이 넘어간다. 계속되는 피부 트러블로 자존감도 낮아지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자신감이 사라진다. 지금 이런 악몽같은 하루에 시달리고 있는데, 내가 악몽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어릴때부터 동안이라는 말과 피부가 왜 그렇게 좋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일단 나는 내 피부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딱히 사람들 얼굴에서 피부에 관심있게 보고 다니는 편이 아니라서 내 피부가 누구보다 좋고 말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근데 웃기게도 트러블로 속상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금, 내가 가장 집착하고 있는 건 과거,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던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내심 기뻤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에 피부 좋다는 말을 들으며 은근히 내 인정욕구가 채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사람들이 관심가져주는건 나의 동안 얼굴과 피부였다. 근데 그런 말들이 사라지니 나는 마치 이제는 내가 세상에서 아무것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마냥 6개월동안 좌절감이 들었다. 6개월이 지나고 조금 고통에 익숙해질 때 쯤, 피부가 뒤짚어진 것보다 내가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에 피부가 안좋아진 이유에 대해 마음에서 이유를 많이 찾아보았다. 내가 너무 인정을 바랬던 걸까,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써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피부가 안좋아져도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등등.


 그리고 어제 아침에 이 마음에 관하여 명상을 했다. 어떤 마음이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명쾌하게 내 마음에 닿을 만한 이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해답을 알아낸 건 크리스마스인데 쓸쓸하기도 하고 해서 꺼내본 영화 '어톤먼트'였다. 

 왜 이 영화가 그렇게 끌렸는지 모르겠는데, 이것 저것 하면서도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점점 슬픔으로 치닫고, 내 마음도 점점 슬픔에 농후하게 익을 때, 갑자기 내가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했던 마음을 알아버리고 급하게 영화를 끄고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바라보지 못한, 애써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이 보였고, 그 아이가 그동안 나에게 자신을 알아달라고 외치던 많은 증거가 샤랄라 지나갔다. 그 아이는 바로 '외모가 별로라고 스스로 낙담하는 나'였다.


 어릴 때부터 외모에 별로 관심이 없기는 했지만, 반에서 이쁘고 잘나가던 애들을 항상 동경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꽤나 외모에 관심도 많은 아이였다. 근데 지금 세상에서는 외모보다 내면을 가꿔라. 라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 안에 여성성의 기본적인 욕구까지 뭉갤 필요는 없었다.

 외모 관리를 하는 사람들을 멸시하기도 했다. 외면에 관심을 지나치게 갖는 건 좋지 않아라며 내면보다 외모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을 은근 속으로 깔봤다. "나는 내면이 강하니깐 외모따위에는 관심갖지 않아."


 피부에 트러블이 하나둘씩 일어났을 때 피부과를 절대로 가지 않은 것도 돈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런 곳까지 가면서 외모에 신경쓰고 싶어하지 않았다는거다.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외모에 신경쓰는 내 자신이 싫었다. 외모에 집착하는 내 모습도 싫었다. 하지만 싫어하고 부정할 수록 '외모에 집착하는 나'는 더욱 더 강해져갔다. 그리고 현실로 창조됐다. 외모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외모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나는 계속해서 부정했고,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래서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외모에 맘껏 집착하기로 했다. 그런 나의 모습까지 사랑하려고 한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고, 그런 나약함까지 모두 나인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이뻐보이고 싶고,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마음 또한 갖고 싶고, 그래서 이쁜 외모를 바라는 인간 오지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불안해서 얼굴에 뭘 해야할 것 같은 초조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상황이 보였다.

 

 곤충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느낀 게 있다. 어떤 숫컷 사마귀는 암컷 사마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몸을 최대한으로 늘려 크게 만들기도 하고, 나비도 이뻐보이기 위해 현란한 날개를 갖기도 한다. 물고기도 최대한으로 튀어보이려고 아름다운 비늘을 걸치는데 인간이라고 다를까, DNA를 이어나가기 위한 동물의 본능인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암컷 DNA와 이 본능을 굳이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쁘고 

싶으니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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