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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n 28. 2020

자산홍과 육개장

  2009년 5월, 새벽에 짧은 투병을 했던 회사 선배의 임종을 전해 들었다. 그날 오전 뉴스에는 전직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회사에 출근을 했다가 선배의 장례식장을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들렀다. 이미 벚꽃은 지고 자산홍은 만발했다. 5월도 다 가 코앞에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꺼내며 젊은 선배의 홀연한 죽음과 내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투표를 했던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몹시도 슬픈데 슬픔이 슬픔인지 당황스러움인지 모를 일이었다. 어제까지도 이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장례식장은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이었다. 택시를 타고 뒷자리에 앉아 선배를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젊은 사람의 마지막 길을 어떻게 배웅해야 할지 몰랐다. 선배는 20대에 입사해 젊은 날 많은 현장에 있었다. 가끔 회사 옥상에 올라가 동기들과 노닥거릴 때면 담배를 피우러 올라온 선배를 마주 할 때가 있었다. 털털하고 사람 좋아 늘 남자 동기들이 많이 따랐었는데 술 좋아하고 잘 웃었다.


  여전히 너무도 젊은 선배의 갑작스러운 암투병 소식에 나도 그리고 동기들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선배는 30대 중반도 되기 전 투병 후 1년도 안되어 몸 이곳저곳이 폐허가 되었다. 마지막 병문안을 갔던 부장은 우리에게 선배가 마지막으로 먹고 싶어 하던 것을 말했는데 부장이 들고 갔던 유리병 속 오렌지주스였단다. 선배는 심한 전이로 마지막까지 시원한 물 한 모금 먹지 못했다 한다. 부장은 환자복을 입은 젊은 후배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손에 들린 주스 박스가 부끄러웠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병원 매점에서 주스를 산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웠다고. 택시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선 연신 전직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과 시민들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서로 다른 죽음이 생경했다.




  동기들을 기다려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다들 침울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땅바닥만 괜한 신발끝으로 차고 있었다. 막상 영정 속 선배를 보아도 믿기지 않아 자식 잃은 선배의 부모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내가 그동안 가보았던 장례식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떠들썩하고 약간은 과장된 슬픔이 녹아있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도 고요한 비애가 떠다녀 누구 하나 제대로 입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잘못 같았다.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하얀색 비닐이 덮여있는 탁자에 앉으니 붉은 육개장이, 건더기가 많고 소고기가 육개장이 차례로 나왔다. 종이 일회용 그릇에 담긴 육개장을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휘저어 보았다. 고추기름이 섞이지 않아 국위에 둥둥 떠 있었다. 조미료 섞인 육개장의 얼큰한 냄새가 느닷없이 허기를 덮쳤다. 예상치 못했다. 사람이 죽어 슬프고, 그 애통함을 감당하는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배는 고프고 식욕이 느껴진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장례식장 앞 화단에는 자산홍이 만개 해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온 선배들은 눈인사만 할 뿐 꽃 핀 화단 앞에서 다들 연거푸 담배만 피워댔다. 늦은 봄 피다 여름이 오기 직전 꽃은 진다. 너무도 흔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그 꽃이 붉어 보였다. 깊은 안타까움과 서러움이 고여 있는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도 활짝 피어있는 자산홍이 얄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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