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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안개 Mar 24. 2021

오전 6시, 둘 만의 시간

우리 강아지는 밤이 되면 그렇게 사랑 많은 강아지가 된다. 혼자 잠들고 싶지 않아서 붙잡아 두려고 더 그러는 건가.. 여하튼 눈만 마주치면 배를 보이고, 살짝 쓰다듬어주면 행복한 얼굴로 지긋이 눈을 감는다. 지난밤은 내가 당번이어서 늦게까지 거실에 남아 강아가 깊이 잠든 것을 지켜보다가 새벽녘에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은 이 아이의 방광을 신뢰할 수 없어서 새벽 두 시쯤 한 번 깨워서 오줌을 누이고 온다.



밤에 자다가 한 번씩 꼭 똥을 누기 때문에 밤에는 배변패드도 깔아 두는데, 새벽녘 배변할 곳을 찾아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한다. 이럴 땐 잠 귀가 밝은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눈이 번쩍 뜨였으니 지체 없이 거실로 나가서 좌우로 왔다 갔다 거리는 강아지를 패드 위로 유도했고, 강아지는 패드 한가운데에 똥과 오줌을 나란히 누고서 다시 남은 잠을 자러 자기 침대로 돌아갔다. 



잠을 따로 자긴 하지만, 아직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지내고 있다.




오전 여섯 시, 눈을 뜨자마자 강아지부터 안고 집 앞 화단으로 나갔다. 강아지는 내려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줌을 눴다. 이제 여기서 변을 보란 얘기인 걸 아는 건지 오줌을 누고 나서는 즉시 내 쪽으로 돌아 나왔다. 



집에 와서는 늘 하는 것처럼 욕조에서 발부터 씻긴 후 사료를 준비했다. 밥그릇 내려놓는 걸 기다리지 못해 앙앙 거리는 강아지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그랬더니 약간 당황하는 모습. 그제서야 앉아서 기다리길래 조용해진 후에 사료 담긴 그릇을 강아지 앞에 내려놓았다.



강아지가 밥을 먹는 사이 나는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장운동이 활발한 아기 강아지 특성상 식사 후 15분 이내에 똥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므로 밥그릇을 비우자마자 강아지를 데리고 또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집 계단 아래 화단이 아니라 반대편 공원으로 나갔는데, 내려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폼을 잡기 시작하더니 똥을 눴다. 그게 또 얼마나 기특하던지! 일단 중요한 숙제는 한 셈이다.




그리고서 한 바퀴 공원을 걸었다. 내가 가는 방향으로 어제에 비해 훨씬 잘 따라와 줬다.



중간에 아주 큰 개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온 머리가 하얀 아저씨를 만났다. 나는 강아지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긴장했고 강아지도 멈춰 서서 꼬리를 바짝 세웠다. 반면 큰 개들을 데리고 다니는 주인들은 작은 개들이 짖거나 무서워하는 광경을 자주 겪어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 익숙한 얼굴이다. 너그럽고 여유 있다. 이 아저씨도 일부러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한 채 내게 말을 걸었다.



“어느 방향으로 갈 건가요?”

“저는 저쪽이요,”

“그럼 나는 이쪽으로 갈게요. 걱정 말아요!”

그가 이 말과 함께 엄지를 척 들어 올리고 활짝 웃어 주는데, 덕분에 이 아침이 한결 유쾌해졌다. 아주 사소한 상황도 세련되게 처리하는 아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강아지와 둘이서 "부르면 뛰어오는 놀이"를 했다. 내가 멀어지면 가만히 내 움직임을 응시하다가 “kom(이리 와)!” 하고 외치며 손짓을 보이면 강아지가 뛰어오는 거다. 아직은 발이 느린 어린 강아지가 열심히 내게로 뛰어오는 모습과 그 때 펄럭이는 양쪽 귀, 활짝 웃는 입을 시야에 담고 있노라면, 이 광경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곁에 온 강아지가 내 품에 폭 안겼을 땐 강아지도 스스로 뿌듯해하는게 느껴지고 나도 그런 강아지가 자랑스럽다. 그간 소소한 발전도 있어서, 내가 손에 간식을 들고 있을 때는 그 손에 부딪치지 않도록 스피드 조절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구 달리다가 마지막에 속력을 줄이고 슬라이딩하듯 손 앞에서 딱 멈춰서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동안은 몇 번이나 내 손에 코를 꽝 박았었는데! 성장은 아름다운 것이다. 강아지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소소한 삶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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