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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쟁의기술 Feb 16. 2021

설국열차와 클럽하우스

문화 자본이 만들어내는 계급의 재생산

설 연휴의 여유를 즐기며, 넷플릭스에서 미국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설국열차>를 시청했다. 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스토리가 각인된 터라 '뭐 얼마나 재밌겠어'라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 후기에도 영화보다 못하다는 혹평과, 호평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의 시대 배경보다 10년 앞선 2021년을 그리며, 새로운 등장인물과 사건들로 드라마를 구성하여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설국열차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빙하기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윌포드 인더스트리'가 제작한 현대판 노아의 방주, 설국열차를 배경으로 하여 부자 vs 부자가 아닌 사람들 간 자본주의 계급 갈등을 이야기로 다룬다. 설국열차의 제작비용을 지원한 부자들을 1등급에 배정하고 최고의 서비스와 숙식을 제공하는 반면, 2등급 칸부터는 티켓 가격별로 등급을 나누어 승객을 구분한다. 3등급 칸에는 열차 운영을 위한 노동자들이 주류를 이루며, 꼬리칸은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회 취약 계층, 일반 시민들이 무임승차하여 온갖 고초를 겪는다. 드라마에서는 형사, 수의사 등이 직업군이 꼬리칸에 탑승한 모습을 그리며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 또한 위기의 순간에는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현실판 설국열차, 클럽하우스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클럽하우스를 보며, 묘하게 설국열차의 계급화된 사회가 오마쥬 되어 보인다. 부자들의 자본으로 운영되는 설국열차에서 무임승차를 했던 꼬리칸 사람들은 열차의 노동력 보강을 위한 적임자로 선택받아야만 상급 칸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진 클럽하우스 또한 이미 가입한 사람에게 선택되어야만 탑승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의 UI와 기능은 비교적 심플하다. 모든 유저는 대화방(Room)을 개설하여 운영하거나 참여할 수 있고, 누군가를 Follow 하거나 누군가에게 Follow 당할 수 있다. 오디오 토크 방식의 클럽하우스가 기존 SNS가 가진 기능과 차별점이 없음에도 이렇든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던 이유는 1) 선택된 사람들만 참여 가능하며 2) 음성녹음이 불가하 철저한 보안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선택된 사람들은 가입 시 2개의 초대권을 부여받는데, 대화방을 운영하는 Moderate(운영자)이란 역할 수행의 정도와 클럽하우스 참여도에 따라 추가 초대권을 부여받을 수가 있다. 즉 클럽하우스의 인플루언서가 될수록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된다.

*녹음에 대한 보안유지가 용이한 아이폰에서만 클럽하우스 이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진짜 클럽하우스 앱(왼쪽)을 따라한 가짜 클럽하우스 앱(오른쪽)까지 앱스토어에 등장했다.


한국에서 클럽하우스가 처음 이슈화된 무렵, 나도 지인으로부터 초대권을 받아서 열흘 정도 클럽하우스를 누벼보았다. 초반에는 스타트업 관련 방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한국인들의 가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점부터 다양한 주제의 방들이 운영되고 있다. '뉴비 환영 방', '성대모사 방', '프사 평가 방'에서부터 아나운서나 연예인들이 운영자(Moderate)가 되어 참여자들과 소통하는 방, 그리고 정치인들이 홍보방까지. 본인이 운영자(Moderate) 임을 프로필에 걸어두고, 클럽하우스의 '인플루언서'임을 드러내는 것도 또 하나의 문화이다. 

클럽하우스의 계급은 '영향력'으로 분류된다.


분명 클럽하우스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있다. 바로 성공한 사업가나 유명인사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부담없이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나도 비슷한 성향을 갖거나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통의 갈증을 해소하고 다양한 삶의 지혜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자뭇 씁쓸한 것은 왜일까?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가입방식과 더불어, 팔로우수에 집착하거나 가입에 특권의식을 느끼는 일부 유저들에 의한 안타까움 때문이 아닐까.



자발적 계급사회


클럽하우스를 비판한 가수 딘딘과 배우 김지훈의 SNS 글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딘딘 "클럽하우스, 끼리끼리 권력화… 중세 귀족 파티 연상" 
김지훈 소신발언… 클럽하우스 유행에 "우쭐대고 싶은 심리"


설국열차가 그리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 분노하는 우리들은 왜 SNS 계급사회에 자발적으로 편승하게 될까? 클럽하우스에서 '대화 없이 클럽하우스 팔로우, 인스타 팔로우해주는 방'이 성행하는 것을 보며, 현실의 인풀루언서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엿보게 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주류에 편승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팔로워를 늘려야 한다는 집착으로 변질되어 '클럽하우스'라는 또 하나의 메타버스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권력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끊임없이 남과 나를 가르는 패거리 문화, 서열/기수 문화, 끼리끼리 문화는 노동/자본 계급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문화 계급화를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혹자들은 이러한 계급화가 생존과 번영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의한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클럽하우스가 보여주는 새로운 설국열차의 계급화를 보며 우리는 꽤 많이 씁쓸한 것 같다. 


프랑스의 학자 부르디외는 <구별 짓기>(1995)라는 저서를 통해 현대의 지배구조가 기존 자본주의 계급을 넘어 문화적인 측면에서 유지/재생산되며, 피지배계급 또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끊임없는 계급의 재생산이라는 씁쓸한 현실 속에서 이러한 자본, 문화의 계급화가 인류에 대한 계급화로 전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각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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