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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jeong Jul 10. 2022

영화 <헤어질 결심>

양립할 수 없는 것들


흔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죽은 남편의 유력한 살인 용의자 서래(탕웨이)를 취조하던 형사 해준(박해일)은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초밥을 취조실로 주문해 서래와 함께 먹는다. 경비처리가 되는지 여부는 그에게 중요치 않다.


서래가 치마를 걷어올려 상처를 보여줄 때, 해준은 급히 여경을 부르는가 싶더니, 결국 서래의 허벅지에 난 상처를 직접 촬영한다. 품위 있는 경찰인 그가 원칙을 잊었을 리 없다.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라며 죽은 남편의 휴대폰을 서래에게 내밀 때, 해준의 눈빛은 휴대폰 비밀번호보다 서래에게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한국말이 서툰 서래에게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하라고 후배 형사에게 재차 당부하던 해준인데, 정작 본인의 말과 행동은 불분명하고 다른 여지가 있어 보인다.


살인 용의자를 대하는 형사치곤 다정함이 지나쳐 불편하고, 여자로 대하는 남자라기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다.


그렇게 안개처럼 흐릿한 경계에서 마주하던 두 사람은 서래의 알리바이가 확인된 직후 서로에게 한 발짝씩 다가선다. 의심을 거둘 수 있게 된 해준에게 기쁘냐고 묻는 서래.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불쌍한 여자 서래와 살인자를 쫓을 때 가장 생기 넘치는 형사 해준.


서래는 폭력적인 남편과 살면서, 치매 노인을 간병하면서 한국어가 늘지 않았을 것이다. 일상 대화의 공백을 TV 드라마를 보며 대사를 따라하며 채우고, 남들이 잘 쓰지 않는 문어적 표현과 단어를 쓰는 장면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외롭게 살아가는 불쌍한 서래가 보인다.


주말부부인 해준은 아내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도 잘 들어주지만 아내의 절친한 동료인 이주임에 대해선 성별조차 알지 못한다.


반면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서래의 표정 변화, 무심코 내뱉은 단어들, 알 수 없는 행동의 의미를 하나하나 밤낮없이 떠올린다.


서래(탕웨이)의 집


수사가 종결되고, 서래와 해준은 서로의 공간을 넘나들며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이때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청록색의 반복적인 노출이다. 서래와 해준의 공간을 가득 채운 청록색은 그들이 하나의 분명한 색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파랑과 초록이 섞인 청록색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색을 달리 인식할 수 있듯이, 서래가 어머니와 해준을 위해 선택한 행동들이 누군가에겐 그저 섬뜩한 광기로 비칠 수 있고, 또 다른 이들에겐 누구보다 용기있는 사랑으로 보일 수 있다.



해준이 붕괴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깊은 바다로 향하는 서래, 그녀의 손에는 청록색 양동이가 들려있다.


해준을 위해서 사라지려는 마음과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어 해준의 머릿속에 박제되려는 서래. 사랑해서 헤어어지고야 마는 그녀의 헤어질 결심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박찬욱의완결  #헤어질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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