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에 빠져도 롱디는 못할 거야

섬바다, 거제와 통영

by intojeong


비가 쏟아진다고 했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빗방울이 차츰 잦아들어 안도했던 2022년의 어느 여름날.


서울에서 아침 9시에 출발했고, 오후 5시쯤 거제시 둔덕면에 도착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은 많고 메타인지는 약했던 나는 무모한 도전과 경험을 일삼았고, 그런 탓에 이번 거제도 미팅도 덥석 잡고 말았다. 몇 달간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킥오프 미팅이었고, 일주일에 한 번 거제도로 출근하는 조건의 오퍼였다. 힘들더라도 페이가 맞으면 시도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하루를 보내니 각오를 다진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 네비상으로 서울-거제도는 차로 6시간 걸린다. 한번도 쉬지 않고 달린다면 말이다.



논과 밭 사이에 가끔 집이 있는 거제시 둔덕면. 지인 집에 도착하니 길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닝겐을 쳐다보는 고양이 몇 마리만 눈에 띄었다.



아침부터 허기짐과 피곤함을 한가득 싣고 왔으므로 보상 심리가 제대로 발동한 나는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았다. 이 구역에서 가장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었다. 다행히 그 사실을 눈치챈 지인은 읍내를 가자고 했다.


"열이면 열 모두가 만족하는 식당이에요. 횟집을 갈까도 고민했는데 여길 분명 더 좋아할 거예요."


어떤 식당인지 설명하는 지인의 스토리텔링은 근사했다. 특히 횟집과의 비교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생선구이, 간장게장, 양념게장 이 모두를 1인당 15,000원에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놀라웠다. 여기에 밥과 찌개도 나온다. 동네 장사라지만 인심이 너무 후해서 외지인은 고맙고 황송할 따름이다.

*거제도 아지트 잊지 않겠습니다.

길손더커피

다음날 오전, 미팅을 마치고 본격적인 여행에 돌입했다. 이왕 온 거 며칠 머무르면서 알차게 먹고 놀 작정이었다. 거제도와 통영의 주요 관광지를 섭렵하고 다양하게 맛보기!


파인에이플러스 (파인애플 전문집)


따뜻한 해풍이 부는 거제도는 아열대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후와 환경을 갖추고 있어 파인애플도 자란다고 한다. 그런 지역 특색을 살려 파인애플 전문 식당이 있다고 하니 가보기로 했다.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므로 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싶었으나, 나는 쯔양이나 입짧은 햇님처럼 아니니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스파게티도 짬짜면처럼 토마토반, 크림반 스파게티가 있었으면..


산 등선을 따라 생크림처럼 놓인 구름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러 다음 일정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환복했다. 첫날이냐, 둘째 날이냐처럼 선후의 문제지 바다에 와서 회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메뉴다.


통영 중앙수산시장은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활어회를 파는 곳으로 생선과 조개, 갑각류, 젓갈 등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하다. 나는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챙겨온 벙거지 모자를 썼다.


횟감은 시세 변동이 크기 때문에 흥정이 중요하고, 시장 상인들의 기세에 쫄지 않고 원하는 가격을 말해야 한다.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썼고, 시장을 열심히 누볐다.


대체로 광어+우럭 3만 원이라는 제안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발품을 많이 팔다 보면 특가처럼 좋은 제안도 들어오기 마련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의 최종 선택은 참돔, 우럭, 줄돔 각 1마리씩 모두 3만! (쌈과 초장은 별도 구매)


열심히 돌아다녔기 때문일까, 술안주가 훌륭해서 였을까.. 잠든 기억은 없는데 다음 날 눈을 떴다.

섬바다의 매력, 해무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섬 중에 하나인 소매물도를 가기 위해 배를 탔다.


소매물도 정상


한여름의 땡볕을 등지고 오르는 등산은 고역이지만, 그럼에도 소매물도는 오를 만한 가치가 있다.



물때를 잘 만나면 열리는 신비한 자갈길.



소매물도로 들어가고 나오는 여객터미널은 여러 곳이 있는데 내가 이용한 곳은 거제(저구항)이다. 여기는 수국길이 잘 조성되어 있으니 배를 기다리며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학동몽돌해수욕장

하고 싶은 건 많고 하루는 짧으니 한 끼는 라면과 컵밥으로 때우고, 학동몽돌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누웠다.


둥근 돌을 일컫는 '몽돌'로 가득 메워진 학동몽돌해수욕장은 바닷물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


바람의 언덕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바람의 언덕에 올랐다. 이곳은 산책로도 잘 되어 있지만, 해가 지는 석양이 멋진 곳이다.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일몰


여행 마지막 날, 통영 케이블카를 탔다. 섬바다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닐까 싶다. 특히 미륵산으로 이어진 길을 오르면 360도로 탁 틔인 전망대가 나온다.


미륵산 전망대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어디든, 누구든, 사랑하게 된다면 역경을 이겨내고 찾아갈 것만 같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나는 사랑에 빠져도 절대 롱디는 못 할 것 같다.


좋았다 섬바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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