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립할 수 없는 것들
신념과 융통성은 양립할 수 없다
살인 용의자 서래(탕웨이)를 취조하던 형사 해준(박해일)은 평소 좋아하던 초밥 도시락을 주문한다. 경비처리가 되는지 여부는 지금 그에게 중요치 않다.
서래와 밥을 먹고, 도시락을 치우고, 치약을 나눠 쓰는 장면은 취조가 아니라 흡사 소개팅이나 데이트에 가까워 보인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알 수 없는 기류에 조마조마하다.
서래가 불쑥 치마를 걷어올려 상처를 보여줄 때, 해준은 급히 여성 경찰관을 부른다. 서래가 촬영해도 괜찮다고 하자 해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낸다. 품위 있는 경찰인 그가 원칙을 잊었을 리 없다.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
서래에게 죽은 남편의 휴대폰을 내밀던 해준의 표정이 묘하다. 증거를 찾는 형사의 얼굴과 이성으로 대하는 남자의 얼굴이 겹쳐보인다.
한국말이 서툰 서래에게 쉽게 설명하라고 해준은 후배 형사에게 재차 당부하지만, 정작 본인은 말과 행동이 모호하다. 살인 용의자를 대하는 형사치곤 다정함이 지나쳐 불편하고, 여자로 대하는 남자라기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다.
흔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래는 폭력적인 남편과 살면서, 치매 노인을 간병하면서 한국어가 늘지 않았을 것이다. 서래가 말할 때 쓰는 예스럽고 문어적인 표현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외롭게 살아온 시간들을 설명한다.
반면 해준은 주말이 되면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도 잘 들어준다. 하지만 아내의 가까운 동료인 이주임의 성별조차 알지 못하고, 같이 있지만 늘 딴생각에 빠져있다. 살인자를 쫓을 때 가장 생기 있는 해준이기에 서래의 미세한 표정 변화, 무심코 내뱉은 단어 하나, 알 수 없는 행동들의 이유를 찾느라 이미 머릿속은 온통 서래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래의 알리바이가 밝혀지고 수사는 종결된다. 둘 사이를 가르던 흐릿한 안개가 걷히고, 서래와 해준은 서로의 일상과 공간을 넘나든다. 이때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파랑과 초록이 섞인 청록색의 반복적인 등장이다. 서래와 해준을 둘러싼 청록색은 그들이 하나의 분명한 색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해준이 붕괴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깊은 바다로 향하는 서래, 그녀의 손에는 청록색 양동이가 들려있다.
해준을 위해서 사라지려는 마음과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아 해준의 머릿속에 박제되려는 서래. 사랑해서 떠나려는 그녀의 헤어질 결심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박찬욱의완결 #헤어질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