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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jeong Nov 08. 2022

나는 사랑에 빠져도 롱디는 못할 거야

섬바다, 거제와 통영


비가 쏟아진다고 했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빗방울이 차츰 잦아들어 안도했던 2022년의 어느 여름날.


아침 9시에 서울을 출발해서 오후 5시쯤 거제시 둔덕면에 도착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은 많고 메타인지는 약했던 나는 무모한 도전과 경험을 일삼았고, 그런 탓에 이번 거제도 미팅도 덥석 잡고 말았다. 몇 달간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킥오프 미팅이었고, 일주일에 한 번 거제도로 출근하는 조건의 오퍼였다. 힘들더라도 페이가 맞으면 시도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하루를 보내니 각오를 다진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 네비상으로 서울-거제도는 차로 6시간 거리다. 여기에 휴게소 가고, 식사도 하니 8시간 걸렸다.



거제시 둔덕면은 집과 집 사이에 논과 밭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었다. 지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곧 떨어질 시간이라 길에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낯선 닝겐을 쳐다보는 고양이 몇 마리가 전부였다.



나는 서울에서부터 허기짐과 피곤함을 한가득 싣고 왔으므로 보상 심리가 제대로 발동했다.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았다. 이 구역에서 가장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었다. 다행히 그 사실을 눈치챈 지인은 읍내를 가자고 제안했다.


"열이면 열 모두가 만족하는 식당이에요. 횟집을 갈까도 고민했는데 여길 분명 더 좋아할 거예요."


어떤 식당인지 설명하는 지인의 스토리텔링은 근사했다. 특히 횟집과의 비교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생선구이, 간장게장, 양념게장 모두를 1인당 15,000원에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놀라웠다. 여기에 밥과 찌개도 포함이다. 동네 장사라지만 인심이 너무 후해서 외지인은 고맙고 황송할 따름이다.

*거제도 아지트 잊지 않겠습니다.

 

길손더커피

다음날 오전, 카페에서 예정된 미팅을 마치고 본격적인 여행에 돌입했다. 이왕 거제도에 온 거 며칠 머무르면서 알차게 먹고 놀 작정이었다. 거제도와 통영의 주요 관광지를 섭렵하고 동선을 따라 다양한 메뉴 맛보기!


파인에이플러스 (파인애플 전문집)


따뜻한 해풍이 부는 거제도는 아열대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후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파인애플도 잘 자란다고 한다. 그런 지역 특색을 살려서 파인애플로 레시피를 개발하고 요리하는 식당이 있다고 하니 점심 메뉴로 픽해두었다.


앞으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므로 파인애플 전문집의 메뉴들을 다 먹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나는 쯔양이나 입짧은 햇님처럼 대식가가 아니니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스파게티도 짬짜면처럼 토마토반, 크림반 스파게티가 있었으면..


산 등선을 따라 생크림처럼 놓인 구름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러 저녁 일정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환복했다. 첫날이냐, 둘째 날이냐 같은 선후의 문제지 바닷가에 와서 회와 해산물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통영 중앙수산시장은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활어회를  파는 곳으로 생선과 조개, 갑각류, 젓갈 등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하다. 나는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챙겨온 벙거지 모자를 썼다. 횟감은 시세 변동이 크기 때문에 흥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시장 상인들의 기세에 쫄지 않고 원하는 횟감과 가격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모자를 깊게 눌러썼고, 시장을 열심히 누볐다.


대체로 광어+우럭에 3만 원이라는 제안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발품을 많이 팔다 보면 특가처럼 좋은 제안도 들어오기 마련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의 최종 선택은 참돔, 우럭, 줄돔 각 1마리씩 해서 모두 3만! (쌈과 초장은 별도 구매)


열심히 돌아다녔기 때문일까, 술안주가 훌륭해서 였을까.. 잠든 기억은 없는데 다음 날을 맞이했다.

  

섬바다의 매력 - 해무


이튿날 아침, 거제도-통영 여행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소매물도로 가기 위해 배를 탔다.


소매물도


한여름의 땡볕을 등지고 오르는 등산은 아주 고역이지만, 그럼에도 소매물도는 오를 만한 가치가 있다.



물때를 잘 만나면 열리는 신비한 자갈길. 주변에는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소매물도로 들어가고 나오는 여객터미널은 여러 곳이 있는데 내가 이용한 곳은 거제(저구항)이다. 여기는 수국길이 잘 조성되어 있으니 배를 기다리는 동안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학동몽돌해수욕장

하고 싶은 건 많고 하루는 짧으니 한 끼는 라면과 컵밥으로 때우고, 잠시지만 학동몽돌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누웠다.


둥근 돌을 일컫는 '몽돌'로 가득 메워진 학동몽돌해수욕장은 바닷물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


바람의 언덕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바람의 언덕에 올랐다. 이곳은 산책로도 잘 되어 있지만, 해가 지는 석양을 보기 아주 좋은 곳이다.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일몰


바람의 언덕에 있는 풍차 너머로는 등산로가 있는데 그 위쪽까지는 가보진 못했다. 소매물도와 바람의 언덕을 동시에 소화하는 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전망대


여행 마지막 날,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전망을 보기 위해 통영 케이블카를 탔다. 섬바다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닐까 싶다. 특히 미륵산으로 이어진 길을 오르면 360도로 탁 틔인 전망대가 나온다. 보는 위치마다 조금씩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제격이다.


미륵산 전망대


상상과 현실은 조건이 붙으면서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어디든, 누구든, 사랑하게 된다면 역경을 이겨내고 찾아갈 것만 같지만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나는 사랑에 빠져도 롱디는 못 할 것 같다. 좋았다 섬바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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