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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로 Oct 06. 2022

평등이란 이름의 갑 질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헌법은 모든 법률의 부모와 같다. 형사, 민사, 노동, 경제 등 모든 법률들은 헌법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이루어진 법률이다. 헌법의 범위에서 벗어난 법률은 헌법재판소에서 심의를 거쳐 심판받는 이유이다.  

   

헌법에서 정한 “법 앞에 평등하다”에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할까? 성별의 평등은 상대성이라서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애매모호하다. 인간들의 규범이나 규정, 윤리, 관습, 가치관 같이 정의된 이론들은 시대와 사회를 이루는 집단의 성향에 따라서 상이(相異)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는 재벌이나 권력층이 사회적 약자에게 적용하기 위한 것이어서, 조삼모사(朝三暮四)와 같이 무질서하고 시끄럽다. 남성으로부터 사랑받아야 할 여성들이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이중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방용 분기배관을 만드는 중소기업 'A철강업체'는 제품을 제작하고 시공은 외주업체에게 맡긴다. 작업현장은 프레스 소리와 쇠파이프가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대화를 하려면 소리를 치면서 한다. 바로 옆에서는 파이프를 용접하는 팀이 있어서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3D 업종에 해당하여 호흡기와 청력뿐 아니라 신체에 장애를 입을 수 있는 환경이다. 

    

 오후 14시쯤, 생산현장 사람들이 프레스 기계 앞에서 웅성거린다. 곧이어 한 중년 여성이 손가락을 붙잡고 공장장의 차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급하게 출발했다. 차가 보이지 않자 현장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손가락이 잘렸데” “뭐, 얼마나?”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 직원의 손가락을 절단한 프레스의 주변은 핏방울이 보였다. 프레스는 소름 돋는 기계음을 토해내고 있었고, 담당 반장이 프레스 기계의 전원을 끄자 싸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멈추었다. 단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손가락을 잘린 여 직원은 신음소리도 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직원 차에 끌려가듯 올라탔고, 웅성거리던 작업현장은 다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15분쯤 되었을까? 사무실 직원 2명이 프레스 주변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뭐 잃어버렸어요?"라며 옆 프레스 기계에서 일하던 직원이 묻자 "아까 손가락 잘린 아주머니 손가락을 찾아서 빨리 건네주면 붙일 수 있다고 하네요."라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듣자 직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여기 있어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모든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른 약지 손가락 한 마디가 검은색 핏방울을 머금고 프레스 기계 아래쪽에 있었다. 사무실 직원이 식염수로 오염물질을 씻더니 알갱이 얼음이 가득한 비닐봉지에 손가락을 넣고 바쁘게 출발했다. 

    

2일이 되자 손가락이 잘린 여 직원이 웃는 얼굴로 출근을 했다. 한 손에 붕대를 감아서 작업은 못해도 청소를 하면서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일을 하겠다고 출근을 한 것이다. 처음부터 손가락을 챙겨서 병원에 갔으면 봉합 수술을 해서 다시 살릴 수 있었다는데, 골든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손가락을 살리지 못하고 절단된 상태로 살아야 했다. 40대 초반의 여성이 오른쪽 약지 손가락을 잃었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하랴. 그런데도 여직원은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보조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후 노동부 감사도 없었고, 안전교육도 없었다. 사건 당일 프레스 안전센서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도, 사람의 손이 프레스 절단선에 있는데 왜 작동을 했는지도 설명도 없었다. 그래도 동료 직원들은 "어떻게 해, 어떻게 해"할 뿐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고 지역사회에서 A업체에 대한 소문이 나쁘게 퍼지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파이프 소리, 매캐한 용접가스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A업체는 2000년 대 초반에 잘 나가는 중소기업이었다. 공장이 전국적으로 몇 군데가 있었고 가스 파이프, 원유 파이프, 일반 파이프를 생산하고 소방용 분기배관을 만들어 시공까지 하는 업체이다. A업체 전체 직원이 500명 정도 되었다. 이곳 지사에는 직원이 25명 정도이며 생산직 현장에서 여성 2명이 일하고 있다. 여성 직원은 프레스의 단순 작업 같은 공정에 투입되어 일하고 있다. 그래도 여성이 쇠 파이를 만지면서 일하기에는 힘든 작업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여성 가장의 슬픈 현실이었다. 

    

2000년 대 이전에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급여가 작았다. 같은 일을 해도 급여가 적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자신들이 잘나서 월급을 많이 받고, 여성들은 못나서 월급을 적게 받는다고 생각한다. 평상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남자들이 상급자인 것처럼 여성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같은 입사동기인데도 자신은 주 업무를 하고 여직원이 보조 업무를 한다는 이유이다. 하다못해 업무가 아닌 허드렛일까지 시키는 것을 보면 직장 동료의 갑 질은 최악이다. 

     

한 달 후 'A철강업체'가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본사와 지사에 인원 감축을 한다고 하였다. 희망퇴직자를 공고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임직원이 사원들을 개별 면담하는 것이다. 퇴직할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합의하에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권고사직이었다. 남자 직원들 몇 명이 작업거부를 하면서 회사의 재무제표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구조조정을 하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회사의 답변은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후 현장 여직원 2명과 남직원 5명이 1차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불법해고라면서 권고사직을 반대했던 직원들과 손가락 잘린 여직원과 친하거나 동네가 같은 사람들이었다. 해고통지서를 들고 와서 왜 우리가 해고되어야 하냐며 항의하는 직원들에게, 회사의 대답은 실업급여를 받게 해 주겠다며 생색을 내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현장의 사고를 감추기 위한 회사의 불법적인 해고통지서였다. 회사는 거세게 저항하는 직원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경찰까지 부르면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대가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여직원 2명은 남편도 없이 아이들과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40대 여성들이었다. 

     

어느 날 A업체 앞 버스정류장을 지나가는 시내버스 안에 낯익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A업체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이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한 여인이 여름인데도 왼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손가락 잘린 여직원은 해고통지서를 오른쪽 손에 꼭 쥐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고용보험센터로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멋쩍은 듯 웃음을 지었다. 참 슬픈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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