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랑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간다는 것은 거울 앞에 선 내 알몸과 같다. 옷이라는 허울을 벗고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서면 그제야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옷에 가려진 내 몸은, 가공된 색상과 재단된 천의 디자인에 가려져 근본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알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내 생각들이 검은 글씨체로 그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나 스스로 내 알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도 이러하니 내 마음을 글로 써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글이 아니라 사랑이라면 어떨까.
처음으로 내 마음을 글씨로 표현한 적이 있다. 15살,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수백 장을 썼는데 결국은 보여주지 못했다. 남학생으로써 여선생을 좋아했던 감정보다, 남자로서 여자를 좋아하는 감정이 더 컸던 것 같다. 오죽하면 선생님과 같이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느라 중간시험을 망쳤을까. 학기말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는데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이렇게 쓰고 싶었는데, 결국 수십 통의 편지가 안부를 전하고 묻는 일반적인 편지가 되어버렸다.
남·여의 사랑에 대한 개념도 시대가 바뀌면서 변하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했던 과거에서 평등한 희생을 요구하는 현재까지 변화의 과정은 험난했다. 중요한 것은 과거는 마음으로 사랑을 했지만 현재에는 생각으로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마음과 생각,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고 묻는 것처럼 혼란스럽다. 비익조(比翼鳥)처럼 마음과 생각은 전설의 새처럼 신비스럽게 우리의 신체에 스며들어 있다. 생각으로 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인간의 생각은 이기적이다. 생존본능이 마음이라면, 생존하기 위해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들은 모두 뇌에서 생각으로 정리된 것이다. 나만의 생존이냐, 가족의 생존이냐, 국가의 생존이냐, 인류의 생존이냐는 마음에서 생각으로 정리된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서는 사랑도 그렇다. 나를 위한 사랑을 할 것인가, 나와 너를 위한 사랑을 할 것인가, 가족을 위한 사랑을 할 것인가는 모두 마음에서 뇌의 측두엽에 위치한 해마에서 뉴런에 의해 생각으로 정리된 것이다.
사랑을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생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견우와 직녀,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이 한 번에 생명력이 하나로 합쳐져서 모든 것이 하나로 되는 것이다. “필이 꽂혔다” “운명이다”라고 표현하며 삶과 죽음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사랑이다. 마음의 사랑에는 ‘갑’도 없고 ‘을’도 없다.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어미의 행위가 희생이 아니고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자식이 어미이고 어미가 자식인데 누가 희생을 했단 말인가. 마음의 사랑이 고귀하고 지켜져야 하며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마음으로 맺어진 사랑은 연꽃과 같아서 인간 세상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사랑에 대한 갑 질은 각각이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애매모호하다. 사랑은 본질이 없는 것이어서 ‘갑’ 질뿐만 아니라 ‘을’ 질 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사랑을 나누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견우와 직녀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눈물겨운 사랑을 글로 읽으면서 함께 슬퍼하는 이유가 가슴 아프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의 언행을 보면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은 사람의 유전적인 정보들이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생성되는 것이라서 생각으로 정리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뇌의 뉴런이 호르몬을 통해서 유전자적인 정보들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생각의 영역(뇌)으로 들어와 뉴런이 생각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사랑이 글로 써질 수 있다면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연애편지를 써 내려가는 그 감정은 마음이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진실되고 아름답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있는 사랑을 글로 쓸 수 있다면 사랑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연애편지를 쓸 때의 두근거림은 분명 심장이지만, 심장에서 온몸으로 뿜어져 뿌려지는 핏줄기 속에는 사랑이라는 유전자일 것이다. 마음이 생각으로 스며들어 글로 환생하기까지 우리들은 얼마나 더 사랑할 준비를 해야 할까?
생각하는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생명들이 안타깝다. 생각하며 사랑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폭력이라는 아픔이, 이별이라는 슬픔이 지난(至難)한 인생에 시지프의 형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