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데 좋아하진 않아요.

by Claire Kim

론 뮤익 전시를 꼭 관람하겠다는 의지는 아니었고, 전시작품 처럼 누워있고 '싶지만', 이불 동굴에 숨어있는걸 '좋아하지'않기로 했으니 뛰쳐 나와 볕좋은 5월의 어느 목요일 오후 만난 작품들이다.


작품 제목은 보이는 그대로 <침대에서>이다.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실제 작품의 크기는 6미터가 넘고 거인이 누워있는 형상이다) 여성을 보면, 솔직히 작가가 '늙음'을 조롱하는건지, 찬사를 보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백인의 노화는 얇디얇은 피부에 비친 핏줄, 더 촘촘해진 주름때문에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당최 삶에 흥미라곤 없어보이는 무표정이 어찌나 친근한지 묘한 동질감에 눈을 뗄수가 없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에서는 형벌처럼 나뭇가지더미를 힘겹게 들고 있는 여인이 심지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한마디 하는 환청이 들린다.


"너도 한번 들어볼래?"


화들짝 놀란 마음으로 만난 다음 인물은 더 매운맛이다.

첫째가 2살 둘째가 아기띠에 매달려 살던 시절, 마트 들렀다 집에 와서 신발 벗고 저녁 대첩 치르기 직전의 내 몰골이 딱 저랬을것이다. 언제 부터 누적됐는지 알 수없는 다크써클, 세제와 기저귀, 바나나, 유아과자가 뒤엉킨 무겁기 그지없는 종량제봉투 장바구니.

그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 둘째는 마른 걸레 쥐어짠 듯이 서 있는 엄마에게서 뭐하나 포근하고 뜨듯한것이 떨어질새라 엄마 입만 쳐다보고있다.

그렇게 저렇게 살아남아, 한 때 '학씨 아저씨' 못지 않은 인생을 살았을 듯한 할아버지는 식탁에서 닭이랑 대치하고 있다. 이 할아버지가 지닌 유일한 무기는 흰색 사각 빤스이다.


그리고 작가의 상징적인 자화상이라는 <마스크 II>를 보면 벌린 입사이로 당장이라도 침이 흘러 내릴것 같고, 볼 부분의 확대된 모공은 안면홍조가 연상되고, 이마가운데 잔뜩 날선 핏줄은 오십견이와서 잘

때도 딱 저 표정으로 끙끙대는 남편이 오버랩된다.


그와중에 자화상이라는데 '타고난 눈썹 모양이 참 예쁘네'라고 쉰소리를 할때 쯤 뒤를 보면 리얼리티의 극치인 이 작품의 진가가 보인다.


텅 비었다.


이 거대한 마스크의 얼굴 가죽 뒤는 무서우리만큼 텅텅비었다.

아무리 오색찬란 화려하게 치장하고 살았어도 죽을때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는가?

남는건 정교하게 짜 맞춘 두개골과, 허무하게 삭아버린 코뼈일뿐.


살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들여다보기도 전에 '원한다'고 믿는 허상을 쫓아 반강제적 중독의 삶을 살게 된다.


성공과 성취의 중독이든, 무력감과 염세주의의 중독이든, 지금 내 손에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허상을 간절히 원하며 살고있는건 아닌가...


론 뮤익이란 작가의 하이퍼리얼리즘의 세계로 잠시 들어갔다 나오니, '좋아하는것을 원하는 삶'을 더 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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