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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Apr 28. 2021

기자가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한다는 것

 한동안 주요 언론사들의 신입 기자 교육 과정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시신 부검 현장’ 견학이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주로 맡게 되는 취재가 각종 사건, 사고 현장이다 보니, 그중 가장 험악한 사건인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절차와 과정을 제대로 알라는 의미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교육을 받게 했는데, 교육의 마지막 단계가 바로 시신 부검 현장 견학이었다.

 살아오는 동안 부검은커녕 시신 자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신입기자들은 부검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높아지게 된다. 실제 부검 역시 매우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견학생들은 시신에서 서너 발짝 떨어진 자리에 서서 부검 과정을 지켜보는데, 절대로 잡담을 하거나 웃어서는 안 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어도 안 된다. 공익을 위해 귀한 교육의 기회를 준 시신의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검이 필요한 시신들은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이고, 각종 사건 사고에 얽혀 있는 일도 적지 않아 심하게 훼손돼 있는 경우가 많다. 부검의들은 그런 시신의 두개골을 갈라서 뇌를 꺼내 분석하고, 배 속의 내장들을 빼내 하나하나 손에 들고 사인을 찾아낸다. 이렇게 적나라한 부검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되는 신입기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도중에 뛰쳐나가기도 하고, 매우 드물지만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이런 교육까지 받아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실제 사건 현장에 나가보면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시신을 볼 때도 있고, 교통사고 현장에서 여기저기 잘려나간 시신을 접하기도 한다. 특히 끔찍한 곳은 살인 사건 현장이다. 시민의 제보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다 보면 때로는 경찰보다 빨리 도착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살인 현장을 말 그대로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된다.


 기자가 되고 얼마 뒤, 승용차 짐칸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간 적이 있다. 도착하고 보니 너무 서둘러 갔는지 아직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여기서 조심할 게 절대로 사건 현장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건 현장에서는 경찰이 먼저 도착해서 폴리스 라인을 쳐서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현장을 보존하지만, 가끔 이렇게 기자가 먼저 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특종 욕심에 현장으로 마구 들어갔다가는 큰 일 날 수가 있다. 취재 과정에서 증거를 훼손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현장에 도착해 일단 목격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얼마 뒤 경찰이 다. 곧이어 경찰이 짐칸을 열자 눈앞에서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심하게 부패해서 제대로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시신이 그 안에 있었다. 눈보다 더 힘든 건 코였다. 참기 힘든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결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코를 막을 틈도 없었다. 곧 사라져 버릴 사건의 현장을 재빨리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신의 유기 상황과 부패된 모습, 그리고 이를 처리하는 경찰의 모습을 하나하나 상세히 보고 기록했다. 사건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전달함으로써 진실 추적에 도움을 주고,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왜곡을 막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기에, 끔찍하다고 피할 수 없고, 괴롭다고 미룰 수도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취재를 마치고 보니 수습기자들에게 시신 부검 현장을 보게 했던 선배들의 뜻이 이해가 됐다. 취재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기자가 혼자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일로 인한 충격으로 취재가 부실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힘든 일은 ‘죽음의 현장’이 아닌 ‘죽음 이후’에 있었다. 사망 사건 취재 때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가 빈소 취재다. 사건이 있기 전 고인의 행적과 평소 삶에 대해 알려면 빈소에서 유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이게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으로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무슨 질문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실제 유가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진실이 드러나거나,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는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기도 하니, 괴롭다고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당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가 세상에 나 하나라면 유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접촉을 미룰 수도 있겠지만, 언론사가 우리 회사 한 곳이 아니니 조금이라도 망설였다가는 다른 언론사의 특종을 눈앞에서 보고 있어야 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처음으로 빈소 취재 지시를 받은 나는 어떤 말로 질문을 시작해야 할지 준비도 못한  무작정 빈소로 향했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유가족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내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유가족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쌓여있던 울분과 원망이 나에게로 향했다. 자신들의 아픔이 누군가에게 호기심거리가 되고, 뉴스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비난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말이 있었다.


 “너도 인간이냐!”


 말문이 막혔다. 기자의 등장만으로도 큰 상처를 입는 그들의 아픔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취재의 목적은 진실 추적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 속에 언론사간의 특종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욕심도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빈소 취재를 갈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다. 울부짖는 유가족들 앞에서 나는 왜 그곳에 있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취재를 하는 것인지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면서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고, 사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빈소 취재 지시가 내려왔다. 취재 의욕을 상실한 채 빈소로 갔더니 입구에서 유가족 한 분이 조문을 온 거냐고 물었다. 그 앞에서 취재하러 왔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얼떨결에 그렇다고 답했더니 곧바로 고인의 영정사진 앞으로 안내했다. 거기서 발길을 돌릴 수도 없어 향을 들고 섰다. 그러자 고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얼굴로 웃고 있는 그의 얼굴 속에서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을 그의 인생이 보이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나야 했을 그의 아픔이 보였다. ‘뉴스의 대상’이 아닌 ‘한 명의 사람’이 보였다.


 유가족에게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나와 빈소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빈소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나니 유가족 한 분이 나에게 찾아와 말을 걸었다. 혹시 기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니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고인에게 조문을 하고 아픔을 공감해주는 내 모습을 보고 ‘저런 기자라면 마음을 털어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참 동안 고인의 죽음에 얽힌 의문점들을 털어놓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나는 거기서 기자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억울함으로 가슴을 치는 사람이 호소할 곳이 없어 방황할 때 그곳이 바로 기자가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닐까. 뉴스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뉴스가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빈소에 취재를 갈 때마다 나를 괴롭혔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후로 빈소에 갈 때면 고인과 유가족의 아픔을 공감하고자 노력하며 그들이 나에게 다가올 때를 기다렸다. 끝내 그들이 나를 찾지 않으면 억지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노골적으로 취재열의를 내보이는 다른 기자들보다 유가족들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나도 연차가 쌓이면서 빈소에 취재를 갈 일이 잘 없다. 하지만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취재하든 그때 영정 사진 앞에서 느꼈던 마음은 잊지 않으려 한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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