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강고하게 지켜온 원칙 하나를 깼다. ‘절대로 SNS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무너뜨리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SNS가 사람들 간의 소통의 중심이 되고, 그 속에서 핫한 정보들이 오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퍼거슨 감독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도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그건 브런치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열흘 전부터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고르고, 그림파일을 만들고, 문구를 고민한다. 계기는 첫 출간이었다.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출간 이후 여러 독서 관련 채널에서 출연 요청이 잇따르고, 웹툰이 만들어지고, 온라인 서점에서 추천도서로 올라가면서 책과 관련한 활동이 잇따르고 있지만 마땅히 독자들에게 이런 소식을 전할 통로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소소한 소식들을 브런치에 올릴 수는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내 오랜 원칙을 접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막상 인스타그램을 하려니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았다. 처음 출판사에서 만들어준 카드 뉴스 형식의 파일들을 올렸더니, 곧바로 지인들한테서 핀잔이 돌아왔다. 인스타에 ‘이렇게 태그 하나 없이 사진만 한꺼번에 열 장을 올리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곧이어 출간 관련 소식들을 올렸더니 ‘인스타에는 일상 사진도 올려야 하는 거’라며 인스타의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렇게 나는 여러 핀잔과 지적들 속에 리그램이라는 것도 배우고 링크하는 법도 익히며 초보 인스타그래머의 발걸음을 한 발짝씩 떼고 있다. 손쉽게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있고,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이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이 인스타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은 브런치다. 내가 생각하는 브런치의 가장 큰 미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SNS와 비교해 브런치는 글 한 편 올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확실히 길다. 글감을 정할 때부터 과연 내가 잘 쓸 수 있는 소재인지, 사람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이야기인지, 지금 이 시점에서 다룰만한 내용인지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을 한다.
글의 평균적인 길이도 SNS의 글보다는 눈에 띄게 길기 때문에 글을 쓰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인다. 글을 완성하고 나면 함께 올릴 사진 고르면서 또 한 번 시간이 흘러간다. 먼저 내가 갖고 있는 사진들을 살펴보고, 딱히 쓸 만한 게 없으면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러 사진들을 둘러보며 내 글과 어울릴 만한 짝꿍들을 찾아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혼자 빠져들었던 감정에서 조금씩 거리가 생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내 글을 바라보게 되면서 나만 혼자 관심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과도하게 감상에 젖은 유치한 표현들이 고쳐진다. 도저히 작은 공사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함량 미달의 글은 빛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노트북 속 창고에 보내지기도 한다.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많은 것들이 걸러진다. 자연스럽게 고민이 얕은 글이 올라갈 확률이 낮아지고, 글에서 실수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브런치에서 글을 올리는 걸 ‘발행’이라고 하는 것처럼, 정말 잡지를 발행하는 것과 같이 글 하나에 많은 공을 들이게 된다.
브런치는 구독자가 느는 속도도 상당히 느리다. 웬만한 인플루언서들이 10만, 100만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유튜브나 SNS와 달리, 브런치는 최고 인기 작가들도 구독자가 많아야 몇천 명 수준이다. 그럼에도 ‘구독 꾹’을 호소하는 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난히 천천히 올라가는 구독자 수를 지켜보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며 한 명 한 명의 구독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게 브런치다.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구독자가 읽고 싶은 글은 뭔지, 사람들은 요즘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숙고하고, 나의 집필 방향을 되짚어보게 된다. 이렇게 느릿느릿 가는 게 브런치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반면 우리의 삶은 SNS다. 생각도 행동도 빨리빨리, 반응도 즉각적이다. 보이는 건 현란하고 다채롭지만 그만큼 실수도 많고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줄 일도 많다.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으니 반성도 별로 없다. 우리의 삶도 좀 천천히 간다면 후회할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한 템포 쉬었다 가기도 하고, 기다렸다 가기도 하고, 뒤도 좀 돌아보고 가는, 그런 브런치 같은 삶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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