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후배 N은 장점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센스도 좋고, 유머감각도 있어서 항상 주변에 사람이 많다. 일을 할 때는 꼼꼼하고, 사람을 대할 때는 배려심이 깊어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누구 하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세심하게 살핀다. 게다가 글도 기가 막히게 잘 써서 직장에 다니는 와중에도 여러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었고, 악기도 잘 다뤄서 회사 밴드부의 핵심 멤버인데, 운동도 못 하는 게 없어서 회사 대항 체육대회가 열릴 때마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에이스로 활약을 펼친다. 이건 뭐 말도 안 되는 캐릭터 아닌가? 그가 잘하는 이 많은 것들 중 상당수를 못하는 나는 그에게 “난 다음 생에 너로 태어날 계획이야”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그에게도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으니, 그건 그가 ‘욱’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한없이 따뜻하고 인상 좋은 얼굴로 있다가도 대화중에 ‘이건 아니다’ 싶은 게 있으면 한 순간에 돌변해서 폭발하듯 비판을 쏟아붓는다.
그런 그의 ‘욱’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 상대가 대부분 윗사람이라는 점이다. 선배건, 상사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그 특유의 강력한 ‘욱’ 폭탄을 시전한다. 평소 좀 까칠하거나 성격이 안 좋은 사람이 그러면 그러려니 하고 넘기겠지만, 그런 느낌을 티끌만큼도 주지 않던 후배가 갑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걸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그와 친한 선배들은 그에게 제발 욱하는 성질 좀 죽이라고 틈날 때마다 말했다. ‘욱하는 성질 죽이기’라는 책을 사서 선물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진지하게 달래보기도 했다. 그가 셀 수 없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이 욱하는 성질 하나 때문에 윗사람한테 찍히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자기도 몇 번 고쳐보려고 했지만 그게 도저히 안 된다며 아무래도 영원히 못 고칠 것 같다는 거였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의 강력한 욱을 경험한 윗사람들 가운데 그로 인해 그를 멀리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욱 대폭발을 겪은 뒤에도 그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는 손상이 가지 않았고, 심지어 몇 번 그의 욱을 겪은 후 그를 더 인정하고 좋아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오랜 기간 그를 지켜본 결과 그의 욱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었다.
우선 그의 욱이 터지는 때를 보면 자기 개인의 이익이나 자존심과 관련된 적이 없었다. 사회문제나 인권문제, 혹은 조직의 운영 방향에 있어서 정의(正義)나 공정(公正) 등 ‘올바름’의 관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를 듣거나 그런 상황을 접하게 됐을 때 그는 참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그의 갑작스러운 욱에 기분을 상한 사람들도 다시 그 내용을 짚어보며 비록 견해가 다르더라도 그의 욱 속에 담긴 그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그를 더 인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건 상대가 그런 맥락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그릇은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가 그런 그릇을 갖고 있는 사람만 골라서 욱을 터뜨리는 고도의 기술까지 겸비하고 있는 건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또 다른 특징은 욱할 때에도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고 분명한 논리성을 갖고 간다는 점이다. 매서운 표정과 높은 톤의 목소리로 거세게 몰아붙이는데, 근거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제대로 지적을 한다. 그래서 사실 상대는 더 아프다. 차라리 욱의 내용이 불합리하거나 비이성적이면 상대도 그냥 대거리하고 소리 지르며 감정풀이하고 말 텐데, 허점을 너무나 정확하게 찌르다 보니 점점 할 말이 없어진다. 한 마디로 ‘맞는 말’을 하니, 좀 아프긴 하지만 그의 말에 설득이 된다. 그러다 보니 그의 감정이 이해가 되고, 점차 그의 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가 ‘평소에 잘한다’는 것이다. 일상의 삶 속에서 상대가 누구든 언제나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주변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터지는 욱에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욱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에 뒤끝이 남지 않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에게 “욱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욱이 어디서나 ‘꼭 해야 할 말’을 ‘꼭 해야 할 때’ 회피하지 않고 하는 그의 정의(正義)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를 향한 그의 욱에 당황하기도 하고, 잠시 꽁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문득 나를 뒤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니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만약 그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점차 욱하는 게 사라져 버린다면 오히려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그의 욱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