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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19. 2024

호숫가 산책

2023.11.05.일요일

일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방 안의 시계를 보니 8시다. 슬슬 일어나서 씻고 노트북을 켜는데 뭔가 이상하다. 시간이 맞지 않는다. 알고보니 써머타임이 종료되어 휴대폰과 노트북은 자동으로 한시간이 당겨졌는데 아날로그 시계는 내가 고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지금은 8시가 아니라 7시다. 오랜만에 써머타임의 영향을 받아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시행하지 않는, 이 제도는 처음 해외여행갈 때 경험하면서 아주 희한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주 불편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뭐 굳이 전국적으로 시계를 고쳐야 하는 일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휴대폰이나 노트북은 자동으로 적용되어서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깜빡했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 날씨의 변화를 예의주시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다만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그럭저럭 10시가 다 되어서 집을 나섰다. 다들 아직도 자는 것 같아서 조용조용 나왔다. 역시 일요일은 늦잠이 최고지. 근데 왜 나는 항상 일찍 눈을 뜨는 걸까? 이러고는 주중 아침에는 주말에 좀더 늦잠을 잘껄하고 후회할 것이다. 청개구리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Deer lake park라는 곳이다. 전철타고 메트로타운에 가서 버스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집에서부터 공원까지 1시간15분 정도 걸렸다. 이 공원은 밋업 모임의 캐나다 친구가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고 추천해준 곳이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멋지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무들이 가을 색깔을 띄고 있는데 그 모습이 호수에 비치니까 더더욱 아름답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길도 아주아주 편하다. 이런 길 좋아.



오늘도 사진을 정신없이 찍겠구나 싶은데 아차, 보조 배터리를 가져오지 않았다. 에휴. 내가 그렇지 뭐. 이 공원은 전체를 도는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으므로 설마 그 사이에 배터리가 아웃되지는 않겠지. 집에 가는 방법은 알고 있으므로 구글맵은 켜지 않아도 될 것이고 사진과 영상 촬영만 좀 자제하면 될 것 같다. 실제로 공원은 호숫가만 한바퀴 돌면 한시간이면 될 것 같다. 호숫가에서 조금 떨어진 산책로까지 포함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물론 2시간 코스로 돌았다. 호숫가를 한바퀴 돌고 나서 호숫가에서 바라보는 언덕 쪽에 갈대밭이 멋있어 보여서 거기까지 신나게 걸었다.




산책 중간에 자라인지 거북이인지가 나무 등걸에서 쉬고 있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를 유유하게 노저어 가는 작은 보트도 보았다. 그리고 언덕 위쪽으로도 올라가 보았다. 역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모습도 멋지다. 갈대 평원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길은 정말 너무 평탄해서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도 보였다. 참 다양한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거의 막바지에는 청둥오리들(아마 맞을껄?)이 떼지어 노니는 것도 보았다. 청둥오리들이 호수 가장자리로 나오는 것이 신기해서 영상을 찍고 있는데 외국 꼬마 아이가 내 화면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이 대박이다. 하하.




거의 다 걷고 나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대만친구 J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금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려고 하는데 혹시 우리 집에 와서 공부해도 되냐고 묻는다. 나는 지금 공원 산책 중이고 오후 4시쯤 집에 도착할 것 같다고 답을 보냈다. J는 그러면 자기가 4시쯤 우리 집에 와도 되냐고 묻는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기집보다 우리집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라고 했다. 

나는 공원 산책 후 버스를 타고 메트로타운으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월마트에 가서 점찍어둔 작은 선반을 하나 샀다. 기숙사를 떠나기 전, 여기 학생들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다. 커다란 접시와 작은 그릇들을 겹쳐 놓아서 항상 큰 접시를 꺼내기 위해 작은 그릇들을 들어내야했다. 선반이 있으면 편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접시보다는 작은 타파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친구 두 명이 동시에 요리를 하는데 아주 불편하게 그릇들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접시 선반을 사야겠다 싶었는데 이것을 달라라마에서는 팔지 않는다. 결국 메트로타운의 월마트에 나올 필요가 있었다. 오늘 Deer lake park를 선택한 것은 이동 중에 메트로타운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일석이조의 동선이다. 나의 잔머리!

집에 와서 선반을 설치하고 그릇들을 정리했다. 아까 내친김에 산 양념 선반도 샀는데 이것도 설치하고 양념류도 정리했다. 미국 친구가 양념 선반을 아마존에서 주문해서 설치했는데 그것이 너무 작아서 그녀의 많은 시즈닝들과 오일 등을 다 담을 수가 없다. 나도 내 양념들을 함께 놓기로 했는데 자리가 없다. 그녀의 2단짜리 양념 선반은 귀엽기는 한데 수납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내가 추가로 사온 것을 설치하고 나서 싹다 정리하고 나니까 뿌듯하다. 이제 3주 후면 여기를 떠나는데 왜 자꾸 나는 뭔가 손을 대는 걸까? 




주방 정리를 다 마치고 난 후 때마침 미국 친구 M이 방에서 나왔다. 내가 정리한 것을 보더니 좋아한다. 그리고는 각종 양념들을 종류별로 다시 배치한다. 그리고 요리를 준비한다. 그 사이 대만 친구 J가 도착했다. J는 우리를 위해 준비했다면서 감자와 파프리카를 각각 한 봉지씩 꺼내 놓는다. 에고, 너무 많아. 내가 감당 못할 것들을 받으면 나중에 버리게 되기 때문에 넙죽 다 받으면 곤란하다. 나는 조금씩 나누자면서 감자와 파프리카를 하나씩만 꺼냈다. J는 M에게도 감자와 파프리카를 권한다. M도 몇 개의 파프리카를 골랐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파프리카 요리를 해주겠다면서 바로 요리를 시작한다. 그러더니 간단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시지와 밥, 파프리카로 요리를 만들어주었다. 바로 파프리카컵밥이다. 우와, 뚝딱뚝딱 잘도 만든다.




M 덕분에 J와 나는 맛있는 밥도 얻어먹고 문법 복습을 하면서 모르는 것도 물어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다. 시험공부는 짧고 굵게 끝냈다. 구동사 중에서 중요한 것들만 한번씩 읽고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우리가 문장을 만들면 M이 맞는 문장인지 확인해주었다. 역시 직접 문장을 만들면서 익히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 외워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중에서 몇 개는 기억할 수 있겠지.

우리는 문법 공부를 마치고 M과 대화를 나누었다. M은 자신의 고양이 사진도 보여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도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메신저에 대해 소개를 받았다. Snapchat라는 것인데 기존의 메신저와 비슷하지만 사진을 찍거나 영상통화를 할 때 각종 필터를 이용해서 재밌는 캐릭터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이들은 이런 놀이를 하면서 채팅을 한단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밤이 늦어서 J가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도 뜻밖의 영어 수다 모임을 했다. 아무래도 대만 친구 J는 자신의 집보다 우리집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집에 자주 오는 것이 미안해서 그런지 계속해서 뭔가 먹을 것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렇게 매번 먹을 것을 가져오면 부담스럽다. 내일은 J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지 말고 그냥 편하게 우리집에 오라고 말해야겠다. 이걸 어떻게 영어로 표현하지? 뭘 말하든지 영어로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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