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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12. 2024

마음 아픈 이별

2023.11.22.수요일

문법 수업

마지막 레벨 테스트 성적이 나왔다. 58점이다. 내가 확신하고 있던 것까지 많이 틀렸다. 이게 웬일이래니. 어쩔 수 없지. 그냥 이 정도가 현재 나의 수준인 것을 확인한 것에 만족해야겠다. 교사는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고 빠르게 설명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질문을 계속하니까 중간에 다음 진도를 나가야 한다면서 끊었다. 나도 물어볼게 많았는데 못 물어봤다. 보니까 학생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어째 한동안 친절하다 싶었지만 교사 M은 여전히 학생들의 수준이나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다음 진도는 수동태인데 연습문제를 정신없이 풀고 답을 맞추었다.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아직도 잘 모르는 내용이 많다. 중간에 질문을 할까 하다가 그냥 관두었다. 교실이 건조해서 눈도 뻑뻑해서 자꾸 눈을 비볐더니 더 아프다. 글씨도 잘 보이지 않고 해서 질문이고 뭐고 일단 교실을 빨리 나와 버렸다. 히터를 너무 세게 틀어서 교실이 건조한 것 같다.



듣기 수업

듣기 수업은 바로 옆 교실인데 여기는 그나마 조금 덜 건조하다. 한숨을 돌리고 듣기 수업을 들었다. 방송을 듣고 푸는 문제에서는 디테일을 자꾸 놓쳐서 문제를 틀렸다. 어떤 문제들은 바로 앞 문장 혹은 바로 뒷 문장의 정보에 낚여서 틀린 것도 있다. 나의 덜렁댐은 여전하다. 게다가 오늘은 집중도 못하고 있다.  




읽기와 쓰기 수업

오늘 갑자기 쓰기 테스트를 본다면서 종이를 나눠준다. 이게 뭐래니. 보아하니까 교재의 진도를 모두 나가서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서 쓰기 활동을 시킨 것 같다. 어제 본 시험에 대해서는 왜 안 알려주나? 내일 물어봐야겠다. 쓰기의 주제는 세 가지 중에서 선택인데 나는 '새해의 결심'에 대해 썼다. 매년 새해가 되면 영어 공부, 소설 쓰기, 매일 운동하기를 결심한다. 하지만 잘 지키지 못한다. 올해는 좀 나은 편인가?




점심시간

요즘 대만 친구 J와 내가 밥을 먹을 때 일본 친구 한 명이 합류했다. 거기에 다른 친구도 또 합류했다. 다행이다. 내가 떠나도 J는 이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겠다. J는 자꾸 나에게 뭔가 주려고 한다. 자신이 대만에서 가져온 과자가 있는데 주고 싶단다. 고마운 마음이지만 나는 네가 고향이 그리울 때 먹으라고 거절했다.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보다 더 오래 여기 있어야 하니까 너에게 더 필요할 것이다. 

밥을 먹고 나서 잠시 밖에 나가서 꽃을 사왔다. 내가 좋아하는 교사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나의 첫 문법 교사 S, 나는 그의 수업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나의 첫 듣기 수업 교사 W, 그는 너무 재밌고 유쾌한 교사다. 나의 첫 회화 수업 교사 C, 그녀는 나처럼 나이든 학생들을 배려해주는 착한 교사다. 나의 현재 회화 수업 교사 R, 그녀는 이 학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사인데 그럴 만하다. 나의 첫 보충수업 교사 M에게도 꽃을 주고 싶었으나 그녀가 집안 사정으로 나오지 못해서 대신 편지를 전해달라고 맡겼다. 나의 현재 보충수업 교사 R에게도 꽃을 주었다. 그는 얼떨결에 보충수업을 맡게 되었는데도 참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설명한다. 

교사들에게 꽃을 주니까 너무 좋아들한다.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다. 이번 주가 마지막이라니까 놀라면서 다음 목적지가 어딘지, 언젠가 여기 올 것인지 등을 묻는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사실은 금요일 떠나는 날에 꽃을 줄까 하다가 그냥 오늘 주었다. 분명히 내일과 모레는 엄청 바쁠 것 같아서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친구들을 만나면 작별 노트를 써주느라 너무 바쁘다. 벌써 마지막 주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회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발음 수업이 있는데 나는 이 수업을 수강하지 않는다. 그런데 교사 R이 들어와서 어제 못한 '동심결' 만들기를 가르쳐 달란다. 다들 꼭 만들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다. '영원 혹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동심결'을 꼭 배우겠단다. 그래서 여러번에 걸쳐 시범을 보이고 그래도 안되는 친구들은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가르쳐 주었다. 하나 둘씩 성공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즐겁다. 덕분에 나도 이제 동심결을 아주 잘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작은 재주가 하나 늘었다. 생각해보니까 이거 아주 유용하다. 예쁜 실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즉석에서 만들어서 선물해주면 좋겠다. 발표 준비 덕분에 작은 재주가 늘어서 좋다.



회화 수업

오늘은 멕시코, 브라질, 칠레 친구들이 발표하는 날이다. 브라질 친구는 자신의 나라 음식을 소개하고 유명한 디저트를 직접 만들어 와서 나눠 주었다. 만들기는 아주 간단하단다. 사실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었느나 그걸 그녀에게 요청하면 아주 당황할 것 같아서 참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보자. 

멕시코 친구 한 명은 국민적인 놀이를 알려주었다. 16개의 각기 다른 그림이 있는 커다란 카드를 하나씩 나눠준다. 그리고 그 위에 얹을 수 있는 작은 물건을 16개 준비하란다. 종이를 접어서 준비했다. 진행자에게는 작은 카드가 있는데 그것이 16개의 그림들이 있는 카드다. 진행자가 카드를 보이면서 이름을 말하면 우리는 그 위에 작은 물건을 놓는다. 학생들마다 받은 카드가 달라서 어떤 학생은 빠르게 16개의 칸을 작은 물건으로 채워나가고 어떤 학생은 다 채우지 못한다. 다 채우면 승자가 된다. 처음에는 다들 그냥저냥 하다가 점점 칸이 채워지니까 열기가 뜨거워졌다. 역시 게임은 승부근성을 자극한다. 나는 간발의 차이로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재밌게 게임을 했다. 

또다른 멕시코 친구는 멕시코의 행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하고는 그 행사에서 먹는 디저트를 나눠 주었다. 신기한 것은 이런 멕시코 디저트를 여기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긴 밴쿠버에서 떡볶이도 사먹을 수 있고 김밥도 사먹을 수 있다. 여기는 다문화 도시니까.

나의 칠레 친구는 발표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다. 다같이 신나게 놀면서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 편하게 발표할 수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칠레의 전통 의상, 춤 등을 자신의 가족, 자신의 비디오 등을 곁들여서 설명해주었다. 따로 학생들이 활동을 함께 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많이 정성들여 준비한 발표라서 교사도 만족한 것 같다.




보충 수업

오늘은 문법 보충이다. 지난번 배웠던 조건문에 대해 연습 문제를 풀면서 익혔다. 은근히 헛갈린다. 특히 시제를 유의해서 봐야해서 더욱 어렵다. 연습 문제를 많이 푸니까 조금은 익숙해졌다. 역시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보충 수업이 끝나자마자 근처의 은행에 갔다. 드디어 캐나다 계좌를 닫는다. 의외로 닫는 절차는 간단했다. 카드를 건네주고 여권을 확인하고는 직원이 전산으로 마감 처리하고는 계좌에 있던 금액을 현금으로 준다. 그리고 간단한 영수증을 준다. 그동안 신나게 잘 썼던 카드를 떠나보냈다. 잘가라. 파란색 예쁜 카드야. 아주 편하게 잘 사용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예술회관 앞에서 하는 파머스 마켓을 보았다. 춥고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여기 처음 왔을 때의 마켓은 시끌벅적 요란했는데 지금은 시즌이 아닌가보다.




집으로 와서 옷을 갈아입고 숙제를 하면서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보았다. 앞집에 사는 대만 친구들이 자신들이 받아야 할 물건들이 있는데 오늘 이른 저녁에 도착한단다. 그런데 자신들이 그 시간에 집에 올 수가 없어서 대신 받아달란다. 간단한 택배를 받는 거라고 생각해서 승낙했다. 인스타그램으로 나에게 연락하면 내가 내려가서 대신 받아주기로 했다. 드디어 연락이 와서 내려가 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그들이 시킨 물건들이 너무 양이 많다. 보니까 이들은 커다란 마트에서 생필품, 식품 등을 배송시킨 것이었다. 아니, 이런 것은 직접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많이 당황했지만 다행히 배송 직원이 우리 빌딩의 1층에 있는 수레에 물건들을 다 실어주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옮길 수 있었다. 앞집 문이 열려 있어서 거실에 수레를 갖다 놓았다. 수레의 사진을 보내니까 그들은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많은 줄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처음 시켜본 거란다. 그래. 다음부터는 잘 조절하겠지.

친구의 부탁을 처리한 후 나의 마지막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다. 금요일 듣기 수업의 발표다. 소개할 요리는 김밥이다. 내가 가장 자신있게 만들 수 있는 요리다. 한국에 가면 김밥을 한동안 많이 만들어 먹을 것이다. 내 주방이 그립다. 김밥의 재료들 준비 과정, 만드는 과정을 영어로 설명해야 한다. 준비는 했지만 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의외로 단어가 쉽지 않다. 하는데까지 해보자.


사실 오늘은 하루를 너무 힘겹게 보냈다. 한동안 마음이 많이 힘들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앞서 가거나 뒤에 가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제 밤에 한국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다. 지난 몇 년간 암 투병을 하느라 고생 많았던 친구다. 나와 친구들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머나먼 곳에서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못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잔뜩 울고 싶지만 지금은 꾸욱 누르고 있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서 우리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 놓고 울 것이다. 그때까지 눈물은 잠시 보류하겠다라고 마음 먹었지만 시시때때로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슬픔을 마음 가득 안고 있지만 이곳 생활은 마지막까지 제대로 마무리하련다. 아마 내 친구도 내가 잘 마무리하고 귀국하기를 원할 것이다. 한국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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