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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iin Apr 08. 2024

9와 3/4 승강장엔 갔어?

런던 거주 3일 차 풋내기 심리지도(Psychogeography) 만들기

아침에 눈을 뜨면 날이 눈물 나게 좋다. 이렇게 파란 하늘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미세먼지에 가려 누렇고 탁하기만 한 공기를 마시다 본 하늘이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어 때가 타지 않은 깨끗한 공기를 방 안으로 들였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맨 살을 쏟아붓는 햇볕에 그대로 내어두었다. 흐리고 비가 오는 게 영국 날씨라더니, 이것도 지구온난화 탓인가.


오늘은 관광을 좀 해야지.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은 실존적 위협이나 다름없다. 옆 동네로 이사를 하는 작은 변화일지라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불안은 쉽게 우울을 불러온다. 하물며 나라를 바꿔 이동하는 일은 세상의 종말처럼 버겁다. 나는 통제력에 관한 이야기이자 적응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다. 


영국에 오기 전 나는 괜히 울적해지는 마음이 달래려 구글맵을 켜고 "coffee shops near me, " "galleries near me" 등을 찾아보며 미지의 불안을 설렘으로 대체하곤 했다. 지도 위에 그려진 작은 네모 상자일지언정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들러야 할 곳으로 낯선 동네를 가득 채운다. 그러다 보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에서 익숙한 동네의 정취가 풍긴다. 영국생활을 시작하기 전 나는 런던이라는 낯선 땅에 쉬지 않고 핀을 꽂는 일을 반복했다. 기숙사 주소를 검색해 축척을 높이고 줄여가며 카페와 식당, 뭔지는 몰라도 이름이 독특한 곳들을 일일이 눌러봤다. 


외딴집에 사는 내가 아닌 웃으며 나를 맞아주는 사람들 틈에 나를 그린다. 그러고 나면 문 밖의 세상이 조금은 사람 사는 세상으로 보인다. 그렇게 쌓아둔 목적지가 수북해졌다. 런던 상륙 3일 차. 문 밖으로 한 걸음만 내어 놓으면 그곳에 갈 수 있다. 그 물리적 가능성이 늘어지는 몸을 분주히 이끌었다.


무엇보다 설렌 것은 런던이 갤러리의 도시라는 점이었다. 예술품 경매에서 최고가만 찍었다 하면 틀림없이 들리는 이름 소더비(Sotheby's)의 나라, 그만큼 예술품 구매자도 많고, 예술품을 전시하는 곳도 많은 도시. 런던은 그런 곳이니까. 


나는 낯선 곳에서도 갤러리에 들어서면 이해받는 기분이 든다. 아마 D가 그곳에 있을 듯한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D는 예술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도 사랑한다. 누구의 감상하나 하찮게 여기는 법이 없다. 문외한인 나를 갤러리로 이끌고 나의 짧고 투박한 감상마저도 "네가 정확하게 봤다"며 따뜻하게 읽어주던 친구가 바로 D다. 그는 내게 그림 보는 재미를 가르쳤다. 그저 느끼는 대로 보고, 본 대로 이해하면 된다고. 그러면 그 그림과 내 사이에 관계가 생기고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것들 천지인 이곳에서 이해받을 곳을 찾아 갤러리로 갔다. 



오늘은 테이트모던... 아니 테이트 브리튼? 내일은 내셔널 갤러리, 조만간 사치갤러리. 갤러리 방문 계획을 세우며 모두가 선망하는 도시에 산다는 것은 이런 기분인가 잠시 취해보기도 한다. 분단위로 세운 칼 같은 계획에 쫓겨 다니지 않아도 언제고 다시 오면 된다. 내가 내킬 때 찾아 충분히 느긋하게 즐겨도 기회가 다시 돌아온다는 사치가 이곳에 있다.



기억하시겠지만 나의 정착기는 팬데믹이 극으로 치닫던 시기에 시작된 여정이다. 9월 당시 런던에 내린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건,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전염병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지. 세상 밝게 웃는 얼굴들은 근심이 없다. 그 덕에(?) 대부분의 갤러리나 박물관은 운영을 중단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운영 중이었다. 이런 식으로 예기치 않은 행운을 만날 줄은 몰랐다. 방문하려는 시간에 미리 예약만 한다면 갤러리와 박물관은 모두에게 열려있었다. 문제는 국경이 막혔으니 박물관을 제 발로 찾아올 여행자도 없다는 것. 덕분에 본의 아니게 여행자가 된 3일 차 런던 주민은 미술관을 전세 낸 듯 구경하고 다녔다.



나는 쉼 없이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질투라는 걸 모르는 D는 더 많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보챘고, 이곳의 나를 위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시 오지 않을 호사를 누리며 나는 이 도시에 D의 온기를 더했다. 


"Korean Groceries near me"와 "Asian Groceries near me"를 확인하는 것도 절대 잊지 않았다. 익숙한 맛이 그리운 법이고, 아는 물건에 둘러싸이면 안전지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갤러리 구경을 마치고 '오세요'로 간다. Oseyo. 이름 한번 기가 막힌 그곳은 한국인 유학생과 교민들에게 "저기에 나의 고향이 있다"는 등대가 되어주는 한국식료품점이다. 어서 오라고 나를 부르는 그곳에 간다. 


<H 마트에서 울다>로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신 미셀 저너도 엄마가 그리워질 때면 H마트로 갔다지 않던가. 전혀 모르는 세상의 한 구석, 그리운 기억을 잔뜩 품은 물건이 가득한 장소가 있다. 엄마도 그립고, 두고 온 온기도 그립고, 무엇인지 모를 것도 서럽게 보고플 때 달려가 숨을 곳에 발을 들인다. 고추장, 된장, 간장, 라면을 잔뜩 넣은 가방을 지고 낑낑대며 운하를 따라 기숙사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메시지를 확인한다. 해리포터 덕후 C가 보낸 메시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미친, 너 킹스크로스에 산다고?" 눈을 끔뻑하고 그게 미칠 만큼 놀라운 일인가 생각한다. 장담하건대 나는 기숙사를 예약할 때 이 지명을 처음 들었다. 규모가 큰 교차로려니 짐작했을 뿐이고 "King's?" 제국스럽네 했다.


9월 당시 아님. 현재는 2024 현재 방문자가 많아 가이드라인을 따라 줄을 서야 사진 촬영 가능. 해리포터샵 직원이 촬영.


- 너 그것도 봤어? 9와 3/4 승강장?

- 그게 뭔데? 봐야 하는 거야?

- 해리포터 호그와트 갈 때 플랫폼 벽으로 들어가는 그거 모르냐고.

- 와 씨, 그게 여기야?

- 어, 몰랐던 거?

- 알아야 돼?


집 앞에 관광지가 있다니 한번 찾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C의 덕력에 감사를. 나보다 이 동네를 익숙하게 여기는 C 덕에 이 동네가 조금 더 편해졌다. C와 여행을 하듯, 쥐뿔도 모르는 해리포터 체험을 하며 깔깔거리고 웃어본다. C는 이곳에 있진 않았지만 허겁지겁 역으로 달려가던 나를 기억한다. 이 동네에 첫 기억으로 C와 나의 시시한 웃음을 새긴다.


최악의 순간에 숨어들 안전지대를, 사랑스러운 얼굴들을 지도 곳곳에  마크한다. 그 기억을 오가다 보면 지도 위 공간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을 눈치채게 된다. 이를 테면 내가 좋아하던 카페의 간판이 바뀌는 일, 거주자 증명증(BRP)을 받으러 갔던 우체국이 영영 문을 닫는 일, 이런 사소하지만 내게는 큼직한 변화들 말이다. 시나브로 이 동네는 아는 동네, 내 집이 된다. 나는 이제 이 낯선 땅, 목적만 이루면 단박에 떠나고 싶던 도시가 무섭지 않다.


나의 첫 동네 킹스크로스. 사실 킹스크로스는 "정겨운 동네"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발달한 센트럴 런던이다. 석사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 한 사람씩 자신이 사는 곳을 이야기하던 일이 있다. 런던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보통 자신의 고향을 "West London"이라거나 "North London"이라며 방위로 소개한다. 그때 나는 런던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역을 지칭하는 말인지 알지 못했고 그들의 소개가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울 출신이면 서울 출신이지 북서울 출신이라거나 동서울 출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쭈뼛쭈뼛 우리 집은 킹스크로스인데... 그럼 북쪽이니...? 하니 그들은 킹스크로스가 어디인지는 우리도 다 안다는 듯 끄덕이고 있었다. 킹스크로스는 그렇게나 중심가에 위치해 있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만명의 발길이 오간다. 그럼에도 내게 그곳은 정겨운 나의 고향이다. 그곳에 어리숙한 지난날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새해를 맞이하기 전 꼭 킹스크로스에 간다. 어설프고 겁 많던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나는 너만큼 킹스크로스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라고 말하던 나의 애인 T도 울적해질 때면 킹스크로스로 간다. 그곳에 우리가 함께 쌓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따라 걷다 보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던 내가 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자지러지게 비웃기도 하고, 아침마다 하던 조깅이 싫어 죽상을 하던 T를 깐족대며 약 올리기도 한다. 일본식 고로케를 팔던 푸드트럭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짓는다. 운하를 지나다 보면 굴다리 아래서 봤던 엄청나게 큰 똥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그 똥을 기억하느냐며 분명 사람 똥이 틀림없었을 거라고 말하다 말고 숨을 참은 채 황급히 다리를 빠져나온다. T는 기억하고 나는 잊은 일을 이야기하며 서운해하는 그를 달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기억을 끄집어내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이곳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내가 불안을 떨치려 한 일을 심리지리(Psychogeometry)라고 부른다는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았다. 인간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조건 속에 존재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통해 기억을 만든다. 그 기억으로 재해석한 물리적 공간을 심리지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릴 때는 한 없이 크게만 느껴지던 공간을 성인이 되어 이렇게나 작은 곳이었나 하고 느끼는 것도 일종의 심리지리이다. 


이 세상에 영 혼자라고 느껴진다면 문 밖으로 나가 주변을 걸으며 기억의 흔적을 하나라도 찾아보시라. 하다 못해 이 피자집 앞에서 지난주에 마주친 강아지가 정말 귀여웠더라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내 기억이 자리한 곳에 내가 있다. 물리적 공간에서 지난날의 나를 찾는 일은, 혹은 미래의 내가 기억할 지난 나를 나를 만드는 일은 내가 현재 상황을 잘 다스리고 통제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적어도 나에게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모두에게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문가의 입장을 들어본 일이 없어 모르겠으나  우울과 불안이 밀려들 때 산책 정도의 가벼운 운동도 기분을 전환하는 효과가 있다는 뇌과학자들의 말은 아주 많이 들었다. 속는 셈 치고 심리지도를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신이 살아갈 곳을 아주 조금은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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