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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Jan 15. 2024

인내(忍耐)에 숨은 이야기

어머니의 사랑, 24K 순금 금팔찌

15돈(1냥반)의 순금(24K) 금팔찌 이다.

꼭 조폭이나 건달이 찰 것 같은 금팔찌 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이것은 대학졸업 선물로 어머니가 해주신 소중하고도 소중한 보물이다.

당시에 순금 체인형으로 목걸이를 하는 남자들이 꽤 있었다.  번듯하게 셔츠와 슈트를 입은 사람인데 사우나나 스포츠센터에서 씻을 때 보면 셔츠 안에 감추어졌던 체인형 금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 마음인지 나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그렇게 옷속에 숨기는(?) 금목걸이를 하는 것이 오히려 비겁한 위선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하려면 굳이 숨기지 말고 보이게 하는게 낫지 않아? 라는 유치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려면 떳떳이 하지 말야! ^^  

그래서 나는 어머니께 팔찌로 해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사실 이 형태의 금팔찌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이미 하고 계셨다.  그래서 평소에 나도 농담처럼 대학 졸업하면 하나 해달라고 어머니께 장난처럼 말을 하고 했었다.

팔찌 전면에 忍耐 라고 새겨져 있다

그런데 정말로 어머니가 나의 대학선물로 만들어 주셨다!

재밌게도 어머니는 팔찌에 '忍耐(인내)' 라고 새겨서 주셨다.   속이 용광로처럼 끓고 있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나의 성격을 잘 알고 계신 어머니의 걱정과 내가 나를 잘 다스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금팔찌는 24K 순금 15돈(한냥반) 짜리이다.  아주 묵직하다. (삼성물산 10년 근속으로 받은 순금 메달이 5돈)

나중에 삼성물산 근무 시에 받았던 근속 순금메달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이 금팔찌가 나는 너무나 좋았다.  이것을 차고 있으면 어머니의 사랑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 했다.

IMF의 살벌한 1999년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인 행동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 금팔찌를 삼성물산 상사부문의 신입사원으로 입사 했을 때 부터 당당하게 차고 근무를 했다.

이 금팔찌를 차고 위험지역이라는 중남미, 러시아, 동구권, 중화권 등을 겁도없이 당당하게 매달 출장을 다녔다.  한여름 날씨인 중남미에선 반팔셔츠를 입어 금팔찌가 더욱 선명하게 수십년간의 검도 수련으로 굵어진 나의 두꺼운 팔뚝과 어우러졌다.

금팔찌를 차고 있으면 어머니가 나를 수호해주시는 자신감이 들었다.

원래는 팔찌 안쪽에만 인내 가 새겨져 있었다



재미있는 숨겨진 이야기


*원래 어머니가 금팔찌를 선물해 주실 때에는 '忍耐(인내)'를 팔찌 안쪽에만 새겨 주셨었다.

하지만 어느 여름 토요일 오후 혈기 왕성하지만 금팔찌와 함께 항상 인내를 생각하고 있던 내가 강남 도산대로 한복판에서 유턴을 하기 위해 토요일 정체로 차선 한가득 꽉 들어찬 많은 차들에게 양보를 부탁하며 정중히 인사를 하며 유턴 차선까지 예의바르게 잘 갔는데, 느닷없이 내가 유턴 차선으로 갈 때 양보를 해주지 않고 길을 오히려 막던 하얀 소나타에서 썬루프가 열리면서 손이 튀어나오면서 나에게 뻑큐를 날렸다.

언덕 위 유턴차선 끝에 올라가 유턴 신호를 기다리던 나는 백미러로 그 양야치 운전자와 그 일행의 뻑유 도발과 시비에 그만 인내를 하지 못하고 도산대로 한가운데 유턴 차선 언덕 위 끝에서 후진으로 차를 꺼꾸로 몰고 내려가서 그 두 양아치 녀석들과 괴상한 날개와 각종 썬바이져 등을 달아 한껏 양아치 차로 꾸며놓은 흰 양카 소나타를 맨 주먹으로 손봐주는 헤프닝이 있었다 (요즈음 같았으면 누가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렸을 듯).  

이런 일이 생기자 어머니는 팔찌를 가지고 가셔서 뒷면의 忍耐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앞면에까지 忍耐를 추가로 새겨 오셨던 것이다.  



** 어머니의 사랑과 체온이 느껴지는 忍耐 금팔찌를 차고 전세계를 누비며 지구60바퀴를 넘게 돌고 세계를 누비는 밀리언마일러 글로벌 비즈니스맨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글로벌' 이라는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20년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한 출간 작가이기도 하다.



*** 하지만 오해마세요.  제 속은 뜨겁고 끓고 있지만 함부로 시비나 사고는 먼저 단 한번도 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너지를 좋게 쓰기 위해서 30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중남미 출장에서 돌아오자 마자 도장으로 달려 갔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검도 수련을 했습니다. (과도한 운동으로 팔꿈치 수술을 했을 정도로)

하지만 검도 안했으면 어쩔뻔 했어... 라는 생각은 가끔 해봅니다.

(왼쪽) 지인이 장난으로 만들어준 짤 (오른쪽) 헤외출장 후에 밤 11시까지 검도수련을 하고나서 열기가 남아 있는 도장에서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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