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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경계인 Nov 14. 2022

일 년 전, 나는 한 달 넘게 아이들을 못 봤다.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었던 그녀

2021년 11월 11일,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에 내리는 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빗물이 들어 올린 흙먼지 냄새조차 일 년이 지난 지금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토록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헤아리려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픔 때문이다.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산 빼빼로는 아이들 손에 닿지 못하고, 덩그러니 내 손에 들려있을 뿐이었다...





오후 4시 30분이 넘어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좀 찾아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업무 중이었지만, 잠깐 시간이 날 것 같아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도 이유가 궁금해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아내는 집에 택배가 많이 와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내게 하원을 부탁한 것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시동을 걸었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길 아이들에게 어떤 빼빼로가 좋으냐고 물어볼 생각에 괜히 설렜다. 비가 와서 그런지 어린이집 근처에는 아이들을 데리러온 부모들로 북적였다. 어린이집 입구에 들어서자 보육교사와 눈이 마주쳤다. "00야~ 아빠 오셨어! 집에 가야지" 첫째 딸도 신나게 달려 나왔다. 곧이어 둘째 딸도 내게 달려왔다.


업무 도중 잠깐 나온 탓에 어린이집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었던 탓에 서둘러 어린이집을 나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괜한 자격지심이었다. 둘째 딸 신발을 신기고 어린이집을 나오려는데, 첫째 딸이 가장 친한 친구와 손을 맏잡고 같이 놀이터라도 들렸다가 가고 싶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아이 역시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온 모양이다. 딸 친구 엄마는 나에게 가벼운 묵례와 함께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나 역시 "네,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내가 사랑하는 두 딸을 한 달을 넘게 못 본 이유다.


00 엄마 봤었어? 그런데 왜 나한테 이야기를 안 해?


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정차를 하고 마중 나온 아내에게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올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어린이집 나올 때 00 엄마 봤었어?", "응" 나는 짧게 대답했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받아쳤다. "그런데 왜 나한테 먼저 이야기 안 했어?" 그 말에 나는 입 밖으로 뱉진 못한 체 속으로 생각했다. "별것도 아닌 일일뿐더러, 괜히 이야기했다가 오늘 같은 날 또 싸우긴 싫어...." 아내는 기다려보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몇 분 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너 마지막으로 내가 경고하는데 행동 똑바로 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황당했다. 아니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행동을 똑바로 하라는 소릴 들어야 하지..? 나도 화가 나 전화기를 붙잡고 서로 큰소리치며 또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이혼 소리를 또 꺼냈다.

 

나는 딸아이 친구 엄마의 얼굴조차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00 엄마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를  나쁘게 생각했던 이유는 평소 아내가 게 전했던 말 때문이다. 아내 역시 그 여자와 가까이 지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남편이 있는데 남자 친구도 있는 유부녀들을 자꾸 소개해주려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을 마주했다고, 상대방의 인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않은가?

"네, 안녕하세요." 한마디에 나는 죄인이 되었고, 두 딸아이를 한 달 넘게 보지 못했다.

퇴근 후 낮에 있었던 일들을 마음속으로 삭이고, 빼빼로를 받아 들고 좋아할 아이들의 모습만 상상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이어 슬픔과 좌절에 둘러 쌓였다. 분명 집 안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현관 너머로 들리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집 비밀번호가 바뀐 것이다. 나는 내가 착각을 한 줄 알고 여러 번 다시 눌러보았다.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경고음만 울릴 뿐이었다. 그러자 첫째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 왔어~" 현관 앞에서의 내 심정은 일년이 지난 지금도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가득했다. 한 손에 빼빼로를 든 채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 한 시간이 넘게 하소연했다. 한 달이 훨씬 지나 크리스마스 역시 집에서 혼자 술과 함께 보냈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다룬 <<잡았다, 네가 술래야.>>를 읽어보면, 경계인(BPD 환자)을 떠올리며 경계성 성격장애(BPD)가 맞는지 체크해볼 수 있는 리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글을 통해 참과 거짓으로 구분하는 것은 위험하고 명확한 진단기준으로 삼아선 안된다는 사실을 나 역시 인정한다. 그렇다고 책에 소개된 리스트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 같다. 진단 기준이 되는 수십 개의 리스트들을 읽는 동안 마치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의사가 건네는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처럼 경계인의 주변을 살아가는 비 경계인의 경우 오늘 내가 토해낸 사연처럼 평소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아픔들을 자주 겪으며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다. 오늘 주제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러니 힘들어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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