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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나무 May 01. 2024

강아지를 어디까지 사랑하세요?

그림책 『안돼!』마르타 알테스 글ㆍ그림, 이순영 옮김, 북극곰

어제 오래된 동료모임을 다녀왔다. 20년도 넘게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이다. 한 후배가 내년에 강아지 돌봄 문제로 명퇴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서 놀라웠다. 15년을 함께 한 반려견이 당뇨합병증으로 실명까지 한 데다 이런저런 병으로 힘들어해서 누군가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아지를 키우며 힘든 것보다 받은 사랑이 더 크다고 한다. 한결같이 반겨주고, 변함없는 지극한 사랑은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수고로움은 힘들어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단다. 아픈 자식을 돌보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하는 후배의 대단한 사랑을 보고 감동했다.


50년도 더 지난, 아주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 밖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난다. 이름이 ‘거북이’였는데, 우리 가족이랑 오래 살았다. 어느 날 집을 나가고 들어오지 않았다.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개는 죽을 때가 되면 제 죽을 곳을 찾아 떠난다.”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일이나 어쩌다 개밥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었던 것 외에 강아지와의 애틋한 추억이나 기억은 별로 없다. 밖에서 키워서 그런가? 강아지도 그저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존재일 뿐, 지금처럼 집안에서 자식처럼 키우지는 않았던 시절이다. 그 이후로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내 입장에서 볼 때는 후배가 현재 감당해야 할 것들이 짐처럼 버겁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키우는 반려동물로 강아지와 고양이를 꼽는다. 주변에도 자신을 강아지 바라기나 고양이 집사임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지인들이 많다. 할머니가 손주 자랑하듯이 자신의 강아지를 자랑하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을 보여준다. 시대적인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강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책을 자주 만난다.


설채현의 <강아지 마음사전>, 박정섭의 <검은 강아지>, 수아현의 <심심한 강아지>, 유설화의 <으리으리한 개집>, 백희나의 <나는 개다>, 윤순정의 <특별한 가을>, 여주비의 <복실이는 내 친구>, 리사 팹의 <매들린 핀과 도서관 강아지>, 베로니크 코시의 <책 읽는 강아지>, 안녕달의 <메리>, 그렉 피졸리의 <네가 일등이야>, 고상미의 <신발 신은 강아지>, 로렌 차일드의 <나도 강아지 돌볼 수 있어>, 민소원의 <나에게도 강아지가 있었어>, 사라 저코비의 <네 곁에 있어도 될까?>, 모 윌렘스의 <강아지가 갖고 싶어> 등등, 아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인간과 개가 맺어온 관계의 역사가 깊고, 강아지가 반려동물로서 차지하는 지위가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마르타 알테스 작가의 그림책 『안돼!』를 읽으면서 후배의 마음을 조금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작가인 마르타 알테스는 강아지를 사랑하고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앞면지와 뒷면지에는 강아지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행동과 동작과 표정이 가득 들어있다. 강아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금방 느껴진다. 표지를 보면 노란 강아지가 배를 드러내놓고 꽃을 입에 물고 앉아있다. 무섭거나 귀여운 이미지보다는 좀 웃기고 명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림책 『안돼!』 는 강아지의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이름은 ‘안돼’, 자신은 엄청 착하다고 말한다. 강아지의 행동만 보여주고, 가족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주머니에 ‘안돼!’로만 등장한다. 강아지의 행동은 그야말로 천방지축, 놀부 저리 가라, 대단한 난장판이다. 산책 나가면 줄을 끌고 신나게 뛰어다니기, 음식 맛보기, 마당 파헤쳐서 식물들 뽑기, 흙에서 뒹굴고 집안 어지럽히기, 빨래 잡아당기기, 쓰레기통 뒤지기 등등 하는 행동마다 어이구 소리와 함께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개구쟁이 강아지라면 저지를 법한 일들로 가득하다. 말 안 듣고 장난기 가득한 아이를 보는 듯하다. 사람 입장에서 보면 미운 짓 투성이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어 진다. 가족들은 계속 “안돼!”를 외치지만 강아지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당당하기만 하다. 강아지 입장에서는 나름 이유가 있고 가족을 사랑하는 행동이니 뭐가 문제냐는 거다. 그래서 흙 묻은 발자국을 집안에 남기고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강아지는 마냥 평화롭다. 강아지의 시선만 따라가면서 그림책을 읽다 보면 나도 강아지가 되어 그 행동들이 정당하게 여겨진다. 그림책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이 강아지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엉뚱한 이름표 ‘뭉치’. 사실 이 강아지 진짜 이름은 ‘뭉치’다. 아마도 사고 뭉치라는 뜻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빵 터진다.


강아지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단순한 그림체로 강아지 대변인을 표현하고 있다. 강아지의 입장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들려주고 있다. 덕분에 강아지의 입장에 서서 강아지를 바라보게 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갈등도 줄고 오해가 이해로 바뀌게 된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다.


그림책 작가인 이루리 북극곰 대표는 매번 강연 때마다 ‘웃기거나 찡하거나’의 범주에 속한 그림책들을 읽어준다. 좋은 그림책은 재미있거나 감동을 주는 그림책이라는 명제를 갖고 있다. 그림책 『안돼!』 는 단연코 ‘웃기거나’에 해당한다.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다. 처음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읽다가 깔깔거리며 책을 덮는다. 작가의 이런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닮고 싶다. 천방지축 말썽꾸러기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가족들이나 강아지 모두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서로가 사랑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와 감동을 같이 주는 좋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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