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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09. 2024

대정고을에서 열린 해원상생 굿판

징소리, 설쇳소리, 장구소리, 북소리 대차게 울렸다.

바닷가인 부산 인근에도 정월대보름이나 이월이면 용왕제, 해신굿이 열렸다.

귀국한 다음 해부터 코비드가 덮치며 모든 공연이나 행사가 취소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못 본 굿판을 제주에서 보다니 웬 횡재? 북소리 따라 심장이 요동쳤

간신히 시간 놓치지 않고 행사장에 도착하자 제주 큰굿보존회 무형문화재의 굿마당이 걸게 펼쳐지고 있었다.

 4.3 당시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읍민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어느새 75주년, 당시를 추모하는 문화 축전이  올해가 다 가기 전 대정고을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봤다.

조선 초기 대정현청이 있던 제주의 큰 고을어었던 대정이다.

대정 땅은 전통적으로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반골 기질이 농후한 지역.

이재수의 난을 일으킨 그도 대정 출신이다.

항일운동의 선봉장도 다수 배출됐다.

배경이라면 조선시대 가장 멀고 험한 유배지로, 김정희를 비롯 여러 선비와 지사들의 정신적 유훈이 스며든 고장 이어서일까.

초혼 풍장에 이어 시왕맞이, 초감제, 길치기로 해원굿 마무리되자 겨울해가 뉘엿거렸다.

역사의 거대한 격랑에 휘말려 원을 품고 망자가 된 무수한 꽃 이파리들 맺힌 한 풀어주는 굿.

혼을 불러내 풍장 따라 모셔온 뒤 영혼이 저세상 극락정토 가도록 배웅하는 동안.

굽이굽이 사연 풀어내 고하며 위무하고 나아가 치유되길 기원하는 심방의 목청 굽이굽이 낭창했다.

산자에겐 살아생전 좋은 업 쌓아서 저승길 닦아 부디 서천 꽃길 걸어가라고.

이날 굿판을 주도한 제주큰굿보존회 자체가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3호다.

2001년 이중춘 심방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면서 큰굿이 체계적으로 전승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육지에서는 무당이라 불리는 심방은 신내림을 받아서 된 무녀다.

한국의 전통종교의 무속의 샤먼인 무당은 굿판에서 신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유년기의 어느 날, 송판 담장에 난 관솔 구멍으로 이웃집에서 벌어진 굿 구경을 한 적이 있다.

다 큰딸이 살푼살푼 정신줄 놓으면 그때마다 옷을 벗어젖히고 거리를 배회했다.

방문에 자물통을 채우기도 했지만 그녀는 용케 방을 빠져나와 그러고 헤실거리며 다녔다.

어떤 남자 때문에 마음의 병이 깊어서라고 했다.

아마도 밤중이었던 듯 징소리는 더 크게 들렸고 마당에 장작불 괄게 타오르며 요사스러운 불길 날름대고 있었다.

추녀따라 빙 두른 데다가 대문과 방 앞에도 사람 모형으로 길게 오려 붙인 새하얀 한지가 너울거렸다.

쾌자 자락 휘날리며 댓가지 흔들어대던 무당이 펄쩍펄쩍 뛰면서 작두 타는 걸 봤다.

그 충격이 컸던지 식은땀 흘리며 가위눌렸던 그 밤.  

다시는 몰래 그런 거 구경하지 말라며 엄마한테 몹시 혼난 기억도 난다. ¹



얼마나 많은 슬픔들이 바다로 흘러드는지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모여서 난바다 가득 반짝이는지

모슬포 모랫벌에 서면 알 수 있지

몹쓸포 몹쓸포 하면서도

살아야 하는 나날은 밀물처럼 밀려왔지.



제주작가회의 낭송시 일부다.

모슬포는 대정면에 속해있다.

​바람이 모질게도 거세서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몹쓸포라 칭하기도 하는 포구다.


같은 서귀포 앞바다라 해도 잔잔한 보목포구 자리돔은 뼈가 연해 통째로 횟감이 된다.


반면  파랑 거친 모슬포구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뼈가 쎄서 자리구이로 식탁에 오른다.


그만큼 바람 많은 땅이라 사연 또한 많은 땅.


일제가  중일전쟁의 전진기지로 1930년대 십여 년에 걸쳐서 모슬포에 알뜨르비행장을 깔고 격납고를 만들며 대정 주민을 강제동원해 노역을 시키는 동안 수많은 지역민이 희생당한  .


그로부터 십 년 세월이 흘러 해방을 맞은 이 땅에선,  일제가 만든 폭탄 창고 폭발로 생긴 커다란 웅덩이 (섯알오름 구덩이) 제주 4.3 사태 시 예비검속에 걸린 지역민들의 집단 학살터가 됐다.

아침에 본 사람 저녁에 죽고 저녁에 본 사람 아침에 죽던 험한 시대.

당시 대정에서 원혼이 된 639명의 하얀 위패 나붓거리며, 이제 됐다는 듯 바람결 따라 고개 주억거렸다.  

하늘의 신과 땅의 인간을 연결해 준다는 메신저인 새,

장대 꼭대기 높다라니 앉은 검은 새도 정성 다한 기도에 감응한 듯 전신으로 끄덕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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