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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08. 2024

대정 향교 가는 길에서 문득 떠오른 스타인벡

사계마을에서 대정향교 찾아가는 길은 잘 닦인 대로이나 인적은커녕 오가는 차도 뜸했다.

사방이 확 트인 똑 고른 평지, 주변은 온통 채소밭 너르게 펼쳐져 있었다.

희한하게도 제주도 농촌이면서 귤나무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아 좀 의아했다.

대신 양배추 케일 시금치 마늘 감자 김장무와 배추밭 규모는 거의 농장 수준이었다.

마늘밭이나 양배추밭은 숫제 아득했다.

밭둑 가생이 따라 유채꽃 냉이꽃 연하게 피어 한들거렸다.

인동초도 계절 없이 꽃잎 열었으며 이모작 작물인 감자꽃 하얗고도 탐스러운 꽃대 물고 있었다.

원체 온화한 지역이라서인지 계절 잊고 벌써 봄마중 나온 꽃들.

제주 마늘은 곧 쫑이 올라올 거라 하더니 마늘 포기마다 제법 실해졌다.


문득 캘리포니아의 농촌마을 살리나스가 떠올랐다.

몬트레이 카운티 내의 살리나스는 미국 나아가 세계의 러드 볼(Salad Bowl)로 알려진 농업지대다.

비행기로 비료와 농약을 뿌릴 만큼 바다같이 광활한 농장 지대가 끝 모르게 이어져 장관인 살리나스다.

달려도 달려도 계속되는 로메인 치커리 케일 셀러리 양배추 등등이 네모반듯하게 한밭자리씩 나타났다.

차창을 열면 푸르른 셀러리 향이 확 풍겼다.

온 데가 그린 일색인 살리나스에서는 모든 러드 감이 고루 생산되지만 특히 양배추와 양파, 마늘 산지로 이름이 나있다.

살리나스 밸리 일대 지역은 스타인벡 컨트리(Steinbeck Country)라 부르기도 하는데 거기가 작가 스타인벡의 고향이라서다.

미국에서 작가에게 헌정된 단 하나뿐인 박물관 National Steinbeck Center가 살리나스 메인 스트릿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동부에 헤밍웨이가 있다면 서부를 대표하는 작가가 스타인벡이다.

불만의 겨울, 분노의 포도로 각각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다.

영화화된 에덴의 동쪽은 제임스 딘을 일약 대스타로 만들었고.

살리나스는 캘리포니아 미션 순례하다가, 또 한 번은 손자를 기숙사에 데려다주다가 들렀던 곳이다.

단 두 번 가본 살리나스가 대정향교 가는 길에 뜬금없이 떠오르는 바람에 그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향교 문 앞에 다다랐다.


향교는 본래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중앙에 성균관이 있다면 군현에는 향교를 세워 지방의 유생을 가르쳤다.

특히 숭유 배불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에 이르러선 교육 기능과 동시에 유교 성현에 대한 배향을 중요시 여겼다.

해서 제사를 지내는 영역인 대성전(大成殿)과 강학을 하는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으로 나누어져 있다.

시유형문화재 4호인 대정향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東齋) 서재(西齋) 신삼문(神三門) 정문 대성문(大成門)으로 구성돼 있었다.

세종 2년 대정성 북쪽에 처음 지어진 향교는 여러 차례 옮겨지다가 효종 4년 현 위치로 옮겨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 경내에는 남쪽에 명륜당이 북향으로 서있고 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이 남쪽 향해 서있었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데다 장식이 간결한 명륜당에 비해 현종 때 중건된 대성전을 두른 조각과 단청은 저녁놀 받아 한층 화려했다.

어느 향교나 대성전은 내삼문 외삼문을 둔 신성 구역이라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데 반해 대정향교는 활짝 개방돼 있었다.

향교 맨 위쪽 깊숙이 자리한 까닭에 담장 밖에서 기웃대기나 했던 대성전을 처음으로 들어와 봤다.

한가지 더 색다른 점은 향교마다 은행나무를 심는데 이곳은 이름 모를 노거수가 뜰을 지키고 서있었다.

은행나무가 두루 쓰임새 있듯 세상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이 되라는 뜻으로 심어, 공자도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데.

잎 진 초겨울, 감나무에 휘늘어진 감이  서재 지붕 위에서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유생들 기숙사 격인 동재(양반 자제 기숙사)와 서재 (평민 중 부호 자제 기숙사) 배치도를 보더라도 반상 구분 엄연했던 조선조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향교 기능은 점차 쇠퇴, 개화기 때 과거제가 철폐되자 역할을 잃으며 지금은 춘추 제례만 겨우 지낸다고.

격변하는 세상, 제대로 명맥 유지 못하고 고풍 어린 전통 문화재로 남는 게 향교만이랴.

가뭇없이 잊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 어디 한둘이랴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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