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밤 여덟 시 사십 분에 출발하는 LA행 항공기에 탑승했다. 이륙하자마자 저녁식사가 제공됐다. 케일 치커리 상추 쑥갓 등 야채 신선한 영양쌈밥은 맛이 괜찮았다. 옆좌석에 앉은 또래 여성은 전직 간호사로 자녀들을 만나러 미국에 간다고 했다.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다가 자연스레 잠이 들었다. 숙면을 취하다가 깨어나면 또 식사시간. 그렇게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어느새 LAX에 도착했다. 엘에이 시각은 오후 네 시 가까웠다. 옆자리 그녀는 어쩜 그리도 깊이 잠들고 잘 드시냐며 몹시 부러워했다. 그녀는 잠도 영 못 자고 입이 깔깔해 통 먹질 못했다고 한다.일반석이라도 얼마간의 웃돈을 지불한 앞자리라 그나마 공간이 넓어 편했는데도 그녀는 주리를 틀다시피 곤욕치뤘노라며 머릴 흔들었다. 케리어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돼 한참 만에야 밖으로 나왔다. LA는 날씨 한번 끝내줬다. 늦은 오후 햇살임에도 다소 따스했다.
오래 기다린 딸내미와 만나 집으로 향했다. 마침 러시아워와 맞물려 도로 정체가 심해서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하는 수 없이 도중에 쇼핑몰로 빠져나와 시원한 월남국수로 저녁을 먹었다. 장거리 비행 후에는 맑은 콩나물김칫국이 개운해서 최고인데. 근 여덟 시경 집에 도착했다. 태평양 너머로 공간 이동을 하는데 온전히 만 하루가 걸린 셈이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다음 곧바로 취침에 들어갔다. 그리곤 다디단 꿀잠에 빠졌다. 깨어보니 새벽 네시였다. 의식은 초롱한데 잠이 덜 깬 건가, 여기가 어디지? 헷갈렸다. 잠시 후 비로소 현실파악이 됐다. 열일곱 시간 시차가 있으니 한국은 밤 아홉 시 일 터였다. 그야말로 밤과 낮이 완전 물구나무를 선 형국이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현지 시차 적응만은 순조로이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며칠을 시난고난, 땅을 발로 딛고 있지 않은 듯 허뚱거려졌다. 입안에 염증도 생겼다. 과거에는 비행기를 탄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무조건 신이 났고 무지 좋았다. 어언 2천 년 대 초의 일이 돼버린 그때. 뉴저지에서 한국을 다녀오려면 서부보다 비행시간이 더 걸렸다. 뉴욕에서 인천까지는 열 네시간여가 소요되니까. 그럼에도 피로감을 별로 느끼지 않았던 것은 50대 때라서 그랬던가. 회복탄력성이 좋아서인지 시차극복도 어렵지 않았다. 무리없이 현 위치에 복귀하던 전과 달리 이제는 원상태로의 회복이 영 더뎠다. 생체리듬은 현지 시간에 맞춰 자고 깨어났지만 머리가 명료하지 않았다. 멍하면서 흐리멍덩, 기묘한 상태가 이어지자 괜히 기분 떨떠름했다. 아무래도 힘이 딸렸던가 보다. 자주 왔다 갔다 하기엔 미국과 한국은 너무 멀어 버겁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딸네집과 우리집 번갈아 돌며 안팎으로 청소도 하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느라 바쁘게 지내다 보니 한 달여가 훅 지나갔다. 다시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게 왠지 부담스러웠다. 그 와중 한국에선 비상사태가 벌어져 사회 전반에 불안감이 고조, 국내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가지 말라고 식구들은 말렸다.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행 비자발급이 중단됐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즈음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은 현지 뉴스 미디어를 모니터링하고 정부 관리 및 지방 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라는 국무부 메일을 받기도 한 상황.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비록 혼미를 거듭하는 시국이지만 아들네가 살고 있는 나라이므로 일단 가서 몸소 겪어보기로 했다. 때가 때인만치 한국으로 돌아가려니 솔직히 비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침 열 시 반 LAX에서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국으로 갈 때는 비행시간이 더 걸렸다. 12시간 30분이나 소요된다고 했다. 딸내미는, 전번과 달리 이번엔 되도록 잠을 안 자도록 하라고 했으나 글쎄 잘 지켜낼지? 기내에서 Wi-Fi는 무료가 아니었다. 별도의 사용료로 시간당 $11.95를 받았다. 작은 화면의 폰을 들여다보느니 차라리 영화나 보기로 했다. 그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Mystic River, 톰 크루즈 주연의 The Last Samurai, 뭉클하면서도 가슴 따스해지는 I am Sam, 재난 영화 The Perfect Storm, 한국 영화 기생충도 봤다. 영화 다섯 편 때리고 식사시간 두세 번 갖고 나니 한국에 닿았다. 지루한 감도 들지 않았으며 어거지로 잠을 쫓지 않고도 가뿐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수화물을 찾아 출구로 나오니 언니와 형부가 마중 와 있었다.
지난번에는 LA에서 서울로, 다시 김포에서 곧장 제주로 직행했더니 매우 피곤했다. 여독인지 뭔지 감기몸살을 심하게 치르며 한 달여를 고생했기에 이번은 서울에서 며칠 쉬다 가기로 했던 터다. 한국의 밤 기온은 매우 차가웠다. 미리 날씨체크를 하고 왔기에 두툼한 재킷을 입었음에도 입김이 하얗게 서렸다. 기존의 폰에서 새로 마련한 폰으로 칩을 옮겨야 했으나 다음날로 미뤘다. 일단 언니 폰으로 잘 왔노라며 미국에 카톡 문자를 띄웠다. 언니집에 들어서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잠이 쏟아졌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샤워도 못하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익일 아침에 눈을 뜨니 네시 반이었다. 역시 비행기 시각을 잘 조절해 타면 장거리 여행이라도 시차는 별 문제가 되질 않았다. 서귀포 거처로 돌아온 지금, 시차보다 더 고약한 건 아직도 건공 중에 떠있는 듯한 무중력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