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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주변 풍경

by 무량화


디가 좋을지 오래 가늠해 볼 필요도 없이 갈만한 곳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제주다.

산방산으로 방향을 잡은 건 순전히, 유채꽃 소식이 궁금해서였다.

차에서 내려 고개를 한껏 치켜들었다.

올려다본 산방산 이마 말갛게 씻겨있었으며 하늘은 푸르샨 블루로 청푸르렀다.

저 아래 용머리 해안에 든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였다.

신춘이 왔음을 알리는 노오란 유채꽃밭도 그 풍경 안에 끼어있었다.


앞바다는 은쟁반처럼 하얗게 빛이 났다.

설레는 마음이 앞장을 섰다.

그새 낯선 건물들이 또 여러 채 들어서 있는 언덕길을 구르듯이 쪼르르 내달았다.

훌륭한 수석 한 덩이 산방산의 웅자와 신춘 기별 띄우는 유채꽃과 용머리 해벽에 부딪는 파도의 환대.


늠름한 산방산을 측면에서도 바라보려고 용머리 해안을 돌아 사계리 동동 쪽까지 걸었다.

양배추와 마늘밭 돌담 새새로 유채꽃이 피어 한들거렸다.


어째 유채꽃 색조가 해맑지 않고 이상스러웠다.


바짝 다가가서 보니 여린 꽃이 동해를 입어 꽃대마다 고개 수그린 채다.


설연휴 때도 그랬듯이 요 근래 몇 며칠 엄청난 폭설에 강풍까지 한파 대단했었다.


그 통에 해풍 몰아치는 산방산 자락 유채 포기마다 얼어버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관광객들은 한겨울 꽃의 환대라 즐거워하지만 지난봄 유채꽃의 진면목을 아는지라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동해 입은 안쓰런 유채꽃밭 뒤로하고 호흡 가다듬으며 산방굴사로 올라갔다.


굴이 있는 산을 뜻한다는 산방산.


멀찍이서 보면 전체적으로 종 모양을 한 거대한 용암덩어리 산인지라 사방이 암벽으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명승 제77호로 지정된 해발 395m 높이의 산으로 남쪽 벼랑에 해식동굴이 있어서 산방산이라 부른다.


가파른 암벽에 계단길 고르고 안전하게 만들어 놓았다.

오르기는 편한 길이라도 고도에 비해 도중 여러 번 멈춰야 할 만큼 몹시 숨이 찼다.

심호흡을 할라치면 거친 바람결에 섞인 소리는 마치 무녀가 내뱉는 휘파람처럼 괴이쩍었다.

숨 몰아쉬며 층계 오르던 평상시와는 달리 난간을 붙잡아야 했다.

그만큼 전신이 휘청댈 정도로 바람 심했다.


오르는 도중 곳곳에 '낙석주의' 경고문이 붙어있고 철빔으로 버팀목을 한 철그물도 쳐져있어 머리 위로 손이 절로 얹혔다.


헉헉거리며 드디어 도착한 산방(山房) 굴.


오두마니 솟아오른 산방산 중턱의 동굴, 백여 평은 능히 됨직한 넓고도 둥근 굴이었다.

촛불 밝힌 굴 안은 무수한 불빛으로 황금동굴처럼 환했다.

촛불 일렁이는 가운데 빛무리 두르고 정좌하신 부처님 가피력이 예사롭지 않겠다,

부처님 무량세월 닦으신 기도 공덕으로 저 아래 고해바다 떠다니는 하많은 중생사 자비로이 거두셨을 듯.


오른쪽 저만치 일제 잔재가 아리게 남아있는 송악산과 알뜨르비행장 인근에서 참담하게 벌어졌던 고통스러운 역사의 아픔을 부처님은 그냥 외면만 하셨을까.

대자대비 부처님께서 가엷은 중생의 슬픔에 동참하지 않으실 리 결코 없었을 터.

그랬다, 부처님 시선 방향은 남쪽 바다가 아니라 정확히 송악산이었다.

산 아래서 관측해 보면 동굴 위치 자체가 서쪽으로 비스듬 뚫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저 아래 고해 넘나드는 하많은 중생사, 한달음에 내달려가 건져주고 싶은 애통지심 오죽했으리.

더 많을 희생 그 정도로나마 막아준 손길이 바로 산방굴사 부처님 가피 아니었을까.

크나큰 섭리 분명 작용했으리라 믿는다.

부처님 무량 세월 닦으신 기도 공덕 틀림없이 중생에게로 회향하셨으리라.

그중에도 참담하게 새겨진 송악산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 그나마 그 정도 피해로 그쳤지 싶었다.

비극 연달아 벌어진 송악산 내려다보며 한달음에 내달려가 건져주고 싶은 애통지심 오죽 컸으랴.

더 많은 희생을 그쯤에서 막아준 손길 분명 산방굴 부처님 가피였으리.

합장한 손 절로 간절해지고 고개 더 깊이 숙여졌다.



산방산 발치에 엎드린 용머리해안은 사암층 단층애(斷層崖)가 보여주는 기암절벽으로 유명하다.


기기묘묘한 해안 절벽은 오랜 기간 파도와 해풍에 깎이며 퇴적과 침식 거듭해 오늘의 비경을 품게 됐다.


바로 옆에서 용암 끓어오르듯 마냥 뒤채는 파도의 거친 몸부림.


해풍 거셌으나 12도까지 올라간 기온이라 햇살은 퍽 따스했다.

쉼 없이 철썩대는 파도 소리 들으며 수수만년 전 바닷속 화구에서 시뻘건 마그마 솟구치던 광경을 상상해 본다.


특히 이 용머리 해안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성화산이라고 알려졌다.

용머리 위쪽에 늠름하게 서있는 산방산보다도, 심지어 한라산보다도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화산체라는 것.

'지질 트레일'이 열린 용머리해안은 원시 제주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질 명소.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다로 향하는 듯한 모양새다.

마그마와 화산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완만한 언덕 모양 화산체인 응회환을 만들었단다.

그 위에 형성된 암벽 형체 또한 기기묘묘하다.

해안 절벽은 오랜 기간 퇴적과 침식에 의해 파이고 깎여 기암괴석층을 이뤘다.

이 현무암 절벽은 청청한 남빛 바다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드러낸다.

암벽에 담긴 무늬 또한 굽이굽이 물결치기도 하고, 겹겹이 층 이룬 시루떡 같기도 하고, 이색지게 짜놓은 벌집 형태를 새겨두기도 했다.

더러는 풍화혈이나 돌개구멍을 열어놓기도 했으며, 깊숙하게 패인 해식동굴 쩌렁쩌렁 외치며 포효하다가, 뭉크의 절규처럼 일그러져 있기도 하다.

신곡의 한 장면처럼 오싹 공포를 느끼게도 해, 절로 몸 낮추고 공손히 머리 숙이게끔 하는 묘경의 연속이다.

지구의 생성 역사가 새겨진 이 장관이야말로 경이감을 넘어 실로 신비스럽기만 하다.


아주 오랜 옛적, 지구가 울끈불끈 요동질 치며 하늘 높이 시뻘건 불 토해내는 상상을 하니 무한 외경심에 잠겨 들게 된다.

용머리해안을 한바퀴 도는 동안 문득문득 드는 한 생각, 사암층 바위벽 언제인가 형체 하얗게 사라지는 날 있으리니.

무량 거듭되는 일월의 변화에 따른 풍화작용에 의해서 혹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따라 바닷속으로 가뭇없이 잠겨 들고 말면....

이 세상 그 무엇이 과연 영원할 수 있을까.




* 용머리해안은 064-760-6321로 전화문의 후 탐방/ 만조 시나 기상악화 시 출입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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