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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에서 용천수 탐방로 따라

by 무량화


오랜만에 청명하게 맑은 대기.

이처럼 하늘 푸른 날은 바다를 보러 나가야 한다.

언젠가 대충 둘러본 조천 용천수 탐방로를 차례대로 찾아보기로 했다.

한라산을 넘어 시청 앞에서 조천 가는 차를 갈아타고 조천성당 앞에서 내렸다.

하늘빛 푸르면 바닷물 빛깔은 더더욱 청푸르다.

용천수 생태탐방로에 나와있는 큰 길가 1번 '궤물'부터 2번 '절간물' 등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나갔다.



용천수(湧泉水)란, 한라산 삼다수가 그렇듯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제주 특성에 의해 지하에서 샘솟는 생명수다.

쉽게 풀자면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 물길 따라 흐르다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청정한 물이다.


제주 전체 용천수의 근 10%가 조천읍에 분포돼 있듯 주로 해안가에서 퐁퐁 솟구친다.


그런가 하면 중산간 지역에는 하늘을 받드는 물이라는 봉천수(奉天水)도 있다.


주로 고지대 습지의 빌레 위에 고여있는 봉천수는 '순물'이라고도 한다.


규모가 큰 곳은 빨래터이거나 우마용, 작은 곳은 식용수로 썼다고.


물은 모든 생명체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현생인류의 발상지도 자동으로 물가와 겹쳐진다.


, 지구상의 모든 대도시가 강을 끼고 발달했듯 제주도의 여러 마을들 역시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솟아나는 물의 양과 용천수(산물:살아있는 물)의 숫자는 그 마을의 인구수를 결정하는 지표가 됐다.

상수도가 보급되며 이제는 용천수를 이용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식수와 생활용수 역할을 전담해 온 소중한 용천수였다.



그래서인지 용천수 궤물이 솟는 주변 물가엔 민물이라서 청둥오리 왜가리 원앙이 노닐고 담수어가 뛰놀았다.


궤물을 경계로 신촌리에서 조천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용천수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발전해 왔듯 이를 역사문화적으로 기리며 그 콘텐츠를 살려 마을길을 만든 조천포구 사람들.

조천리는 용천수 밀집 지역으로 과거 마흔도 넘는 산물터가 있었다고.


일대에 산재해 있는 스무 개가 넘는 용천수를 구슬 꿰듯 엮어서 탐방로를 만들었다.


2킬로 남짓한 거리라 그 정도라면 별 부담없이 걸을 수 있었다.


용천수탐방길 B코스부터 시작했으니 내내 왼쪽으로 물색 고운 바다를 끼고 걸었다.


이월이라 봄이 오는 기척이듯 해풍도 부드러웠으며 바다는 아주 잔잔했다.


여긴 올레 18코스와 겹쳐지는 바닷길이기도 하다.



조천 앞바다는 발목이나 적실 정도로 얕은 바다였다.


물결은 잔잔했으며 까만 현무암 빌레가 해안가 여기저기 깔려있었다.


지형이 그래서인지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돌을 쌓아 만든 원담 자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역시나 돌이 흔한 제주였다.


화산섬인 제주라 비가 오면 빗물이 고일 새 없이 곧장 화산암반층 사이로 스며들고 만다.


스며든 빗물이 지하로 흐르다가 바위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구치는 용천수.


조천은 정말 용천수가 퐁퐁 솟아나는 마을이었다.


보석상자 안의 보석알처럼 산물터가 촘촘 박혀있는 바닷가.


보물찾기하듯 하나씩 찾아내 짚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조천에는 궷물, 절간물, 남탕 여탕인 수룩물, 앞빌레물, 수암정암물, 남녀 각 욕탕인 엉알물, 엉알 빨레터, 제주 자리물, 새물, 상동두말치물까지 조천초등학교 인근에 오소소 모여있었다.


개낭개 남녀 각 욕탕, 도릿물, 족박물, 빌레물, 두말치물, 장수물, 생이물, 족은돈지물, 큰물은 연북정 방향으로 가면서 만날 수 있는 용천수들이다.



거의가 해안가에 위치해 있으나 족박물과 빌레물 두 곳은 양진사라는 절 안에 들어있었다.

성벽 위 연북사 인근에 있는 두말치물은 수량이 꽤 많은 용천수였다.

물길 따라 이동하는 도중에 쑥을 뜯는 올레객이 있기에 나도 바닷가 풀섶을 두리번거렸다.

햇쑥이 어느 결에 제법 한 뼘쯤 키 돋워 잠깐만에 손톱으로 쑥 한 줌을 뜯었다.

해풍 맞고 자란 쑥은 더더구나 약쑥, 게다가 겨우내 땅속에서 끌어모은 좋은 기운 담뿍 담겨 향기도 짙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월 영등바람 얼음조각처럼 옷깃을 파고들더니 오늘은 봄이 가까이 온 듯 바람결 온화했다.

걷기에 더없이 알맞은 날씨라 놀멍 쉬멍 간식을 먹어가며 콧노래 흥얼댔다.

감사합니다, 천지 사방에 대고 절로 끄덕끄덕 고개 깊이 수그렸다.

하늘도 바다도 청청, 하루 종일 걸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은 이런 날 튼튼한 다리 또한 고마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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