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바다, 간절곶

부산에서 송정 지나 월내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지중해 스타일로 세련되게 꾸민 카페가 연이어 나타난다.

풍치 좋은 등대를 가까이 보려고 바닷가로 내려서니 신형 캠핑카를 대놓고 낚시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도로 주변엔 주로 대형횟집, 복국집, 장어구이집, 전복죽집, 꼼장어집, 매운탕집 따위가 총총 박혀있다.

그런가 하면 채반에 길게 누워 해풍에 물기 말리는 미역단은 방파제 가드레일 베개 삼아 잠들었다.

소소한 해산물과 채소류를 들고 나오는 오일장이 서는 정겨운 시골마을 장터도 예서 열리는 모양이다.

어스름 무렵에 집을 나선 데다 중간중간 경관 구경하느라 지체하다 보니 간절곶에 닿았을 때는 새카만 밤.

진작에 신년 해맞이 축제며 대보름 달맞이 행사도 끝났으며 새벽시각도 아닌 한밤이다.

일출 구경 대신 야경 정취 맛보려 찾은 겨울 밤바다, 간절곶(艮絶串).

이름만 들어도 괜히 눈가 아련해지고 명치 저릿거리게 하는 간절곶이다.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새천년의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밀레니엄의 첫 해돋이 장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러하듯 정동진, 호미곶과 함께 동해안의 대표적인 일출 명소인 간절곶.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은 지형상으로 당연히 독도다.

그러나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는 의미를 지닌 ‘간절욱조조반도(艮絶旭肇早半島)’라는 말이 울산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이곳.

주차장 바로 옆 공원엔 연말연시를 위한 특별조형물이 아직도 조명 밝혀 불야성을 이루었다.

공원을 감싼 소나무숲에 레이저빔을 쏘아 무대숲은 수시로 색깔이 바꿔진다.

중앙의 황금나무로 향해지는 장미꽃길 담장은 새해 소원을 담은 수많은 이들의 소망엽서로 빼곡히 채워졌다.

신비로운 블루톤의 꽃밭과 슬슬 돌아가는 아담 사이즈 풍차도 귀엽다.

해맞이공원은 오히려 낮보다 밤이 더 역동감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곳이지 싶다.

점점 까매지는 밤, 하늘과 바다를 구분 지을 수 없이 천지간이 온통 칠흑 어둠이다.

오늘따라 해풍 거칠고 파도 드세 바윗전에 부딪쳐 드높이 부서지는 물보라 새하얗다.

사나운 물결 아랑곳 않고 집어등 환히 밝힌 채 점점이 뜬 고깃배는 밤바다에서 한창 어로작업 중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앞서 잠깐 들렀을 때도 있었던 소망 우체통, 바닷가에 선 그 우체통은 다시 보니 반갑다.

간절곶의 랜드마크가 된 우체통은 우체부가 매일 우편물을 가져가므로 실제 우체통 구실을 한다고.

전자메일이 일상화된 시대이나 한번쯤 손으로 쓴 엽서를 우체통에 넣어보는 것도 의미롭겠다.

그 순간 가장 간절히 생각나는 사람이 수취인 될 테고.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은 우뚝 선 돌탑이다.

유럽대륙 서쪽 땅끝마을인 포르투갈의 카보다호카에는 해넘이를 상징하는 돌탑이 서있다고 한다.

간절곶에도 그와 결을 같이 하는 해맞이 돌탑이 세워진 것은 포르투갈과의 국제친선관계를 도모하기 위한 문화교류의 일환인 듯.

포르투갈 국민시인 Camoes의 서사시를 인용한 문구는 이와 같다.

"여기 대륙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도다."란 글이 돌판에 새겨져 있다고.

나지막한 잔디 언덕 위로는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었으며 등댓불이 밤바다에 파란 빛줄기를 비췄다.

하루도 빠짐없이 동해를 지나는 선박의 안전 항해를 위해 바닷길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등대.

이 등대가 불을 밝히기 시작한 지 백 년이 넘었다고 한다.

조각공원 초입에 돌올히 서있는 석비에는 빙 둘러 태화강 상류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새겨 놓았다.

고래를 비롯한 바다 생물과 사슴 호랑이 멧돼지를 이미 신석기시대에 암각화로 남겼던 선대들이다.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에는 각종 동물과 사람 배 그물 작살 등이 면새김 방법으로 표현돼 있다.

그 아래쪽에는 간절한 설화 간직한 신라시대 충신인 박제상 부인과 두 딸이 하염없이 일본 바라보며 애틋하게 서있다.

간절곶 언덕을 내려오다 잠깐 멈춰 뒤돌아보니 모녀상은 희미하게 멀어져 가고,

밤하늘 선회하는 등댓불만 묵연히 푸른 빛줄기로 우릴 배웅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