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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3. 2024

멕시코인의 자부심, 싱코 데 마요

캘리포니아 울 동네 메인 블로 바드에서는 매주 목요일 파머스마켓이 선답니다.

직접 가꾼 오개닉 식품이라서 좀 못나긴 해도 싱싱한 과일이랑 야채랑 올리브오일 꿀 등을 팔더라구요.

물론 간단한 음식 코너도 있고 옷이나 장신구도 파는데 별로 신통치는 않은 편이었어요.

지난 목요일 오후, 집에서 삼 분 거리에 있는 장터로 과일 좀 사려고 슬슬 나가보았답니다.

장이 설 적마다 광장에서 자유로운 콘서트가 열려 잠깐씩 머물기도 하였는데 그날따라
다른 때보다 유독 음악 경쾌하니 크게 울려 퍼지는 게 어쩐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들떠있더라구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이날은 멕시코 전승기념일을 기리는 카니발이 열리는 날이더군요.

서너 블록 떨어진 곳에 멕시코인들이 다수 살고 있는 마을이니 이참에 구경 한번 걸게 하지 싶더라고요.

멕시코가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게 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선조들을 기념하고자 정했다네요.


5월 5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이날을 Cinco de Mayo라 부른다는군요.

한국에선 오래전부터 5월 5일은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의 날이지요.

이날 멕시코에서는 물론 미국에 사는 멕시코인들이 대규모 축제를 펼치는데요.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고유의 음악에 맞춰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하나 되어 즐긴답니다.

싱코 데 마요로 불리는 멕시코 최대의 축제날이 든 그 한주 내내, 곳곳에서 카니발을 열어 다들 열정적으로 한바탕 왁자하니 판을 벌려 먹고 마시는 거죠.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만사태평, 느긋한 표정을 짓는 멕시코인들은 몸매조차 여유만만이지요.

안 그래도 흥겨이 즐기며 사는 낙천적 기질의 멕시코인들인데 이름난 카니발 기간이니 맘껏 신명 푸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저마다 활짝 웃는 얼굴, 세상사 근심 모르는 티 없이 순박한 표정들은 솔직히 부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축제날은 멕시코의 가슴 아픈 역사와 환희의 순간들이 점철돼 있답니다.

식민지를 청산하는 과정의 지난한 아픔들은.
어느 약소국가나 마찬가지로 비슷한 고통을 겪게 마련인데요.

동시에 그러나 멕시코인들의 자부심과 결부된 영광스러운 승리의 기록이 담겨 있다는 이 날입니다.

바람 속의 들풀처럼 외세에 시달려 본 우리이니 그 고달팠던 생활을 짐작할듯하네요.

300여 년간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핍박받으며 살아야 했던 통한 서린 멕시코 역사랍니다.

수많은 희생과 오랜 기간의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해 냈지만,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기나긴 세월을 혼란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황제가 들어섰다가 공화정이 수립되기도 했으며 내전도 끊임없이 벌어졌다 하네요.

거기다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미국의 존재는 멕시코에 큰 위협이었는 데요.

실제로 멕시코는 현재 자신의 영토만큼이나 너른 땅을 미국에 넘기게 되지요.

그래서인지 캘리포니아에 사는 멕시코인들은 이곳을 당연한 자기네 터,
자기들 앞마당쯤으로 여기는 듯해요.

 

안팎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특히 멕시코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경제 문제였다고 합니다.

이미 빚을 질만큼 져 경제 능력을 상실한 멕시코 정부는 외채와 외채 이자 지불을 중단한다는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네요.

멕시코의 채권 국가였던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는 난리가 났을 거고요.

결국 멕시코에 군대를 파견하여 강제로라도 돈을 추징하자는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세 나라가 마침내 멕시코에 군대를 내보내자 긴급 협상 끝에 스페인과 영국은 철수했으나
프랑스만은 미묘한 자국 내의 문제와 얽혀 그리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국 두 나라는 대접전을 벌이게 되었고 멕시코인들은 일치단결하여 외세에 대항합니다.

생즉사, 사즉생이라 했어요.


결국 프랑스와의 치열한 전투 끝에 1862년 5월 5일, 여러모로 약세였던 멕시코가 프랑스군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두게 되었지요.

그 푸에블라 전투의 승리를 경축하는 날, 멕시코의 국력을 널리 알린 이날을 기리는 전통이 바로 싱코데마요라네요.

이후 그날은 멕시코인들에겐 최대의 축일, 기쁨의 카니발을 펼칠만한 기념일로 지정이 된 겁니다.   

정녕 후세까지 두고두고 온 나라가 승전일을 잊지 않고 기념하며 자축할만한 날인 건 틀림없겠네요.

비록 서방 열국에 의해 독립을 맞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식민지 백성으로 뼈저린 세월을 살아왔잖아요.

그럼에도, 수많은 희생은 치렀지만 우리가  힘 합해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않아서일까요.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광복절을 이들만큼 범국가적으로, 나아가 온몸으로 환희에 차서 기리않음은?


남의 나라 축제의 구경꾼 되어 잠시 씁쓸한 상념에 잠기게되더라네요.


해방을 맞은 기쁨도 잠시.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들어서고도 여든 해 가까이, 좌우가 대치한 채 심각한 갈등 겪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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