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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30. 2024

벤투라 피어의 강태공

LA 북서쪽 말리부를 지나 샌타바버라로 향하는 여정 중간에 위치한 벤투라(Ventura).

공식 명칭은 샌 부에나 벤투라 (San Buenaventura)로 연평균 낮 기온이 섭씨 20도인 쾌적한 마을이다.

번잡한 도심을 거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낚시터가 벤투라에 있다는 얘길 듣고 나선 길이다.


부산에서 뿐 아니라 뉴저지에서 대서양으로  바다낚시를 다니던 요셉이라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태평양 낚시의 손맛도 느껴보게 하려고 앞장섰던 것.


비즈니스 처분이 쉽지 않아  한동안 뉴저지에 혼자 남아 수고했던지라 그 보상도 겸해서다.




평화스러운 전원풍의 산지 아래 질펀하게 깔린 포도밭과 오렌지 농장이 도로변 가까이에서 휙휙 스친다.

각종 농산물 산지 정도로 여겼던 벤투라인데 의외로 여긴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풍스러운 히스토릭 다운타운이었다.


더욱이 바로 앞바다에 그 멋지다는 채널 제도 국립공원/해양 보호구역(Channel Islands National Park and Marine Sanctuary)까지 품에 안았다.

게다가 산 부에나벤투라 스테이트 비치(San Buenaventura State Beach)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짙푸른 앞바다에서는 보트와 서핑, 카약 등 해양스포츠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으며
해변가 벤투라 하버 빌리지(Ventura Harbor Village)에 들리면 아기자기한 아트 갤러리, 앤틱 샵이 기다린다.

1920 년대 인근에서 유전이 개발되며 급성장한 이래 다양한 즐길거리를 갖춘 이 도시에서는 식물원 무료 개방에 다운타운 하버 트롤리(Downtown Harbor Trolley)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손에 잡힐듯한 섬에 가면 특이한 동식물 서식처와 바위 위 등대도 만나게 되는 각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1872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유서 깊은 벤투라 피어는 목재 워낙 견실해 웬만한 태풍쯤 너끈히 버티게 생겼다.

처음 피어를 만들 당시, 조선은 고종 재위 때로 대원군이 섭정하며 쇄국정책으로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시기다.

조선에서 신미양요를 일으킨 다음 해에 미국은 이 육중한 피어 건설을 할 만큼 그때도 문물이 앞선 나라였다.

역사에 만일이라는 가정법은 해당이 안 되지만 그때 우리도 일찌감치 개항을 했더라면?

피어에 올라서니 월요일인데도 여기저기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제법 된다.

이미 좋은 자리(생선 손질할 수 있는 개수대가 있는) 인근에는 강태공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러나 낚싯대만 드리운 채 심드렁한 태도로 보아 조황이 영 신통찮아 보인다.

생선 찌끄러기라도 기대한 갈매기는

 입가심도 못한 채 기웃거리며 빙빙 돌고만 있다.

손맛 확실한 고등어 넙치 민어 가오리 상어까지 잡힌다더니 낚싯대 두 대나 담갔지만 입질은커녕  까딱조차 안 하는 게 도통 기별이 없다.

생소한 태평양, 낚시 고수인 요셉도 몇 시간 허비만 하다가 아마도 물때가 아닌 모양이라며 슬슬 장비를 거뒀다.

낚싯밥 엔초비만 날리고 허탕 친 하루, 그래도 모처럼 상쾌한 해풍을 쐰 것만으로도  기분전환만은 제대로 했지 싶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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