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끈한 마라홍탕, 입안 얼얼

by 무량화

마라탕이 몹시 매운 음식이라는 정도는 애진작에 LA 차이나타운에서 알았다.

한자로 마(痲)는 마비되다, 라(辣)는 맵다, 탕(燙)은 뜨겁다는 뜻이 담긴 음식이니까.

거기다 빨간 글씨로 홍탕까지 따라붙었듯 혀가 마비될 지경으로 얼얼해진다니 억수로 매운맛일 터다.

무언가 화끈하게 매콤하고 개운하면서 얼큰한 국물 음식이 땡기는 날이 있다.

낯선 음식에 도전하는 걸 꺼리는 편인데 태풍 여파로 거칠게 부는 바람에 떠밀려 과감히 식당 문을 열었다.

거처 가까운 곳이라 들고나며 자주 봐왔지만 중국 식당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들어갈 맘이 별로 없었다.

차라리 한국인이 하는 중국집에 가서 짬뽕을 먹는 게 낫지, 아니면 스리라차 칠리소스 듬뿍 뿌린 월남 국수를 먹든지.

그랬는데 얼결에 식당 안으로 쑥 들여놓은 발, 아마도 창문에 붙은 '홍탕'이란 새빨간 로고의 유혹 탓이었으리라.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은 듯 실내는 청결했고 탁 트인 공간에 적당히 거리를 둔 좌석 배열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털썩, 식탁에 자리 잡고 앉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중앙에 진열된 재료를 골라 담아 가지고 오면 된다고.

신선한 푸른 잎채소와 뿌리채소·종류별 버섯·두부류·꼬치어묵·메추리알·굵기 다른 쌀국수·대하·숙주나물 등등.

샤부샤부 비슷한 훠궈도 아닌 거 같은데 도대체 어찌 요리가 돼 먹을 수 있다는 거야?

일단 앞쪽에 엎어놓은 큰 대접에 먹고 싶은 식재료를 골라 담아 카운터로 가지고 갔다.

매운 정도를 묻기에 맵게! 했더니 너무 맵다며 보통을 권했고 육류와 밥은 따로 주문하라고 했다.

전체 무게를 달아 중량에 따른 계산서가 나왔다.

그제사 자리에 앉으니 얼마 후 음식이 식탁에 올려졌다.

상차림은 지극히 간단했다.

내가 고른 재료가 볶아졌는지 삶아졌는지 하여튼 노리끼리한 국물 속에 담겨 있었다.

간을 보니 알맞아 다른 소스는 필요 없겠고 단무지 조금 덜어다 놓았다.

첫 수저질에 겉보기와는 달리 아, 매워~ 캑캑~~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피넛버터 맛과 흡사한 고소함에 이끌려 후룩 국물 들이켜다가 된통으로 걸려버렸다.

연타로 재채기에 기침까지, 손님이 꽉 차 있었다면 엄청 난감할뻔했으나 다행히 저만치 떨어진 좌석이라 눈치 볼일 없었고.

벌건 국물도 아닌데 어찌 그리 톡 쏘는 맛이 날까, 머릿속에 지진까지는 아니고 정수리에서 땀이 송글송글 돋았다.

마라는 중국 쓰찬성의 대표적인 향신료로 혀가 마비될 만큼 강력한 Sichuan pepper에 고추를 적절히 섞어 만든다고.

무작정 맵기만 하다기보다 입맛을 개운하게 해주는 그 산뜻함이 자극적이라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매운 음식을 즐기는 편이기에 강한 맛으로 주문했더랬는데 진짜 그냥 밀고 나갔더라면 입안이 치과에서 마취주사 맞은듯했겠다.

푸슬거리는 밥까지 말아 암튼 그릇 깨끗하게 비웠으니 식성 까탈스러운 사람 색다른 음식 첫 도전에 성공한 셈이다.

정신 번쩍 나게 얼얼하도록 화끈하고도 찐한 맛을 간만에 제대로 맛보았으니 불원간 또 찾게 될 듯.

가맹점 체제인 듯했으며 대체로 배달과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더 선호하는 추세 같았다.

저녁식사 시간에다 인근에 학교가 꽤 모인 동네라서인지 학생들 북적거렸으나 일반 손님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고 전화 주문만 불이 났다.

밖에 나오니 하늘엔 구름 사이로 별 몇 개 영롱히 떠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