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렇게 하루를 보낸 하늘이
기어이 벌건 노를 삼키고 말았다
남은 건 하룻밤 지난 재처럼
서늘해진 사람들의 귀가 행렬
하늘도 집에 가버린 시간
땅의 분주함은 죽음만큼 맹렬하나
사실은 빈 껍데기라는 정체가
깨진 얼음조각처럼 드러나는데
오랜 건망증에서 잠시 회복된 것처럼
전조등이 깜빡깜빡 도로를 채우지만
환해지는 건 앞 차의 꽁무니일 뿐
밤의 기운은 새삼 압도적이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부여잡아도
겨우 내 발끝 정도만 비출 수 있어
무거운 그림자들이 시야를 가리니
난 무어에 코끝이 저리는 걸까
안녕
잘 가요
뭔지도 모를 것이
난 그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