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란 란가나스 교수의 책 『기억한다는 착각』
뇌과학이 알려주는 ‘실수 기반 학습법’과 나의 이야기
“시험 보기 전에 모의고사라도 좀 풀걸.”
누구나 한 번쯤 후회해 본 적 있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이 말 속에 우리의 뇌가 학습하는 방식에 대한 놀라운 진실이 숨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최근 뇌과학과 인지 심리학은 “실수를 해야 비로소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실수 기반 학습(Error-based Learning)’이라는 개념입니다. 유튜브 영상 「뇌과학이 말하는 실수 기반 학습법」과 차란 란가나스 교수의 책 『기억한다는 착각』은 이 개념을 뇌과학적 시각에서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어릴 적, 어머님께 자주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틀린 문제가 왜 틀렸는지 알겠어? 이해했어? 그러면 됐어.”
처음엔 단순한 위로나 격려인 줄 알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양한 학습법을 경험하며 이 말이 진정한 배움의 철학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공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야, 너에게 어떤 것을 안다고 가르쳐줄까?
어떤 것을 알면 그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논어 위정편)
이 말은 단지 지식의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른다’고 인식하고, 그 빈틈을 스스로 확인하며 채워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학습의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인지심리학자 로디거(Roediger)와 카픽(Karpicke)은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실험을 했습니다. 한 그룹은 자료를 14번 읽게 했고, 다른 그룹은 몇 번만 읽힌 뒤 세 번의 테스트를 치르게 했죠.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시험 직후에는 반복 학습한 A 그룹이 더 높은 성적을 받았지만, 일주일 뒤 B 그룹은 85% 이상을 기억하고 있었던 반면, A 그룹은 겨우 절반 정도만 기억했습니다.
왜일까요?
시험을 반복하며 ‘잊어버린 것을 억지로 떠올리려는 과정’, 즉 뇌가 버둥거리는 그 순간이 뇌세포 간 연결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실수하고, 막히고, 틀리고, 다시 떠올리는 경험이 학습의 진짜 정수인 셈이죠.
스와힐리어의 ‘잠’이라는 단어가 뭔지도 모르는 학생에게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하고 물으면 당황하겠죠. 하지만 뇌는 바로 이 당황 속에서 놀랍도록 활발해집니다. 잘 모르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추측하려는 과정 자체가 학습 회로를 자극하고, 기억의 연결고리를 만든다는 사실이 연구로 입증되었습니다.
저 역시 실수를 두려워한 적이 많았습니다.
큰 실수라도 한 번 하고 나면, 그 다음 시도는 더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실수는 괴롭지만, 그 괴로움이야말로 뇌에 각인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는 착각』은 학습을 ‘시간과 공간’을 다양하게 분산해서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컨대, 같은 내용을 거실에서, 카페에서, 공원 벤치에서 각각 공부하면 해마(hippocampus)는 매번 다른 배경 정보를 경험하면서 기억을 더욱 일반화된 형태로 저장합니다.
그 덕분에 수능 시험장 같은 생소한 장소에서도, 익숙한 집 침대 위에서처럼 기억을 더 잘 꺼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는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경험에도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낯선 환경,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 처음 맡아본 프로젝트.
그 모든 불편하고 서툰 순간들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켜 준 장면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무언가를 배울 때, 여전히 실수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실수 속에서 오히려 배움의 기회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틀린 문제를 분석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며 나의 지식을 점검하는 것, 항상 같은 장소가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학습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공부법’이 아니라, 뇌가 진짜로 원하는 방식입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 없이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뇌는 우리가 고통을 느낄 때 가장 생생하게 반응하고, 그 순간을 더 오래 저장합니다.
실수는 괴롭지만, 그 괴로움이야말로 뇌에게는 최고의 영양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완벽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완벽함은 실수 위에 쌓인 경험의 탑이기도 합니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괴로움을 피하지 마세요.
그 과정이야말로, 배움의 시작이자, 당신 뇌가 진짜 좋아하는 방식입니다.
어쩌면 어머님의 그 말씀처럼,
“틀린 게 있다면, 왜 틀렸는지 알기만 하면 됐어.”
이 한마디가, 모든 배움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였는지도 모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zd7Qtqyh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