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이글먼의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의식으로 조절한다고 믿지만, 사실 대부분은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빙산 아래에서 조종되고 있다.”
이글먼은 우리의 뇌를 하나의 조직으로 비유한다.
의식은 CEO처럼 회사의 큰 방향을 결정하지만, 실제 업무는 각 부서—즉 무의식적인 뇌 시스템—들이 처리한다는 것이다.
호흡, 걷기, 문을 여는 일처럼 익숙한 동작은 물론, 우리가 왜 특정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무의식의 영향이 크다.
이 책은 무의식이 단순한 ‘뒷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행동, 심지어 도덕적 판단까지 깊숙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실험과 사례를 통해 풀어낸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한 가지 예시가 있다.
“자신의 이름과 유사한 직업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다.
데니스(Dennis)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덴티스트(dentist, 치과의사)가 될 확률이 높고, 로라는 로이어(lawyer, 변호사), 조지는 지오로지스트(geologist, 지질학자)로 진로를 정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른바 ‘암묵적 자기 중심주의’라는 이 개념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익숙하고 친숙한 것을 더 선호하고 신뢰한다는 무의식의 작용을 설명해준다.
심지어 어떤 음료 브랜드를 시음하는 실험에서조차, 이름에 자신의 이니셜이 포함된 브랜드를 더 맛있다고 평가하는 사례가 등장한다.
이쯤 되면, “내가 정말 스스로 결정한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무의식이 잘못을 저지를 때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사례 중 하나는 총기난사범 찰스 휘트먼의 이야기다.
범행 후 그가 남긴 유서에는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사후 부검 결과, 그의 뇌에서는 편도체를 압박하는 종양이 발견됐다.
편도체는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영역이다.
이 사례는 도덕성과 자유의지, 그리고 법적 책임의 경계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언제까지, 무엇까지를 '내가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글먼은 우리 정신을 '정신의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내면에는 서로 다른 욕구와 관점, 신념을 가진 여러 정당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서로 충돌하고 타협한 결과가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초콜릿 케이크 앞에서 고민하는 것도, 한쪽은 “먹자”고 하고 다른 한쪽은 “그럼 살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는 “삶의 모순, 감정의 충돌, 어긋나는 선택들은 오히려 인간다움의 본질”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고, 무의식 속 또 다른 나의 존재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늘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수많은 무의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질문에 대해 더는 단순한 정의를 내릴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뇌과학서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특히 나를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어온 사람일수록, 그 믿음에 도전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O5ZTS6-0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