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구매 담당 대리(30세): 왜 그 날짜에 납품을 못하십니까?
-협력업체 사장(50세): 죄송합니다. 갑자기 긴급 요청을 받아서 일정을 조율하기 어려웠습니다.
-대기업 구매 담당 대리(30세):그러면 비행기로 운송하면 되잖아, 생각이 없어?
-협력업체 사장(50세): 그러면 배로 운송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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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제가 핸드폰 안테나 부품 영업을 했을 때 모 대기업 구매 부서 담당과 납기 일정 협의를 하러 대기업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대기업 공장의 회의실에는 저뿐만 아니라 대기업에 핸드폰에 부품을 공급하는 20여 사의 공급 업체 담당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 협력 업체 직원도 있었고, 저보다 한 참 나이가 많은 협력 업체 직원분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회의 시간인 오전 11시 전에 미리 회의실에 들어와서 넓은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회의 시간은 오전 11시였는데, 대기업 구매 담당자는 정각 11시가 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회의 시간의 10분 정도가 지나서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안경을 쓴 20대 후반의 젊은 사람이 회의실에 들어섰습니다. 회의를 소집한 대기업 구매 담당 대리였습니다. 약속 시간이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가더니 슬리퍼를 신은채 원탁 테이블 위로 올라서서 프로젝터의 기울기를 조정하고 원탁 테이블 위에 그대로 선채로 협력 업체 담당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매 담당 ~~~ 입니다. 모두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협력 업체 직원에게 순서대로 각 부품의 납기 상황과 납기가 못 지켜지는 이유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회의 초반에는 각 협력업체 담당에게 정중하게 존댓말을 쓰더니 납기를 준수하지 못하는 협력 업체들의 해명에 대해서 구차한 변명을 한다고 비아냥 거리면서, 반 말을 섞어 가며 사용하는 것을 보고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저로써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욱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대기업 구매 담당자보다 20살 이상 많은 협력 업체 직원 분들에게도 반 말을 사용하는 것이었고 협력 업체 직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쌍 8년도도 아닌 2005년 도에 소위 누구나 하면 다 아는 글로벌 대기업 직원의 이런 개념 없는 행동은 믿을 수 없었으며, 마치 소설의 복선처럼, 나 같은 협력 업체 직원이 앞으로 계속해서 겪어야 될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찹찹했습니다.
이 일을 겪은 이후로, 당시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원래 대기업 구매 부서 직원들은 회사에 입사하면 협력 업체들을 길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협력 업체들을 위압적으로 대하는 법을 배운데"
저는 이런 말이 소문일 뿐 가짜라고 의심했지만 당시 대기업 구매 담당의 협력 업체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사실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2005년 도의 경험을 16년이 지난 2021년도에도 여전히 겪고 있는 것이 참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어느 날 저는 고객을 방문하여 고객사의 접견실에서 고객과 미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접견실의 칸 막이를 사이로 접견실 한쪽에서 험한 소리가 귀에 살금살금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고객사 생산 관리 직원(40대 후반): 왜 납기를 못 맞추는 겁니까?
-협력사 직원(40대 중반): 저희도 한 달 전부터 납기를 조율 해왔지만 현재의 싱글 조립 라인으로는 납기를 맞출 수 없었습니다.
-고객사 생산 관리 직원(40대 후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네요. 지금 직장 몇 년 차세요?
-협력사 직원(40대 중반): 15년 차입니다.
-고객사 생산 관리 직원(40대 후반): 이 XX야, 그러니까 네가 나이 먹도록 아직도 여기서 일하는 거야, 학교는 어디 나왔어?.......
협력사 직원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고객사 생산 관리 직원은 협력 업체가 제품의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나름대로 큰 고충을 겪습니다. 협력 업체 제품의 납기가 늦어지면 제품 생산과 매출에 영향을 받고 내부적으로 욕을 먹습니다. 그래서 생산 관리 직원은 협력 업체에 화가 많이 나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협력 업체 직원을 상대로 욕까지 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것은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제품의 사양 협의를 위해서 저희 회사와 저희 회사인 경쟁사(A 사라고 명칭)와 함께 고객 연구소를 방문하여 고객의 연구소 직원과 미팅을 했습니다. 저희 회사와 경쟁사 A사는 약 50대 50의 비율로 고객사에 B라는 제품을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희 회사의 50대 후반인 상무와 동행을 했었고, 경쟁사 A사에서도 50대 중반의 간부와 제 또래의 고객 담당 직원이 미팅에 참석을 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총 4명의 협력회사 직원들과 약 40대 중반의 고객 사 1명이 함께 미팅에 참여했습니다.
고객: 이거 언제까지 개선할 겁니까? 이거 개선이 안돼서 유관 부서 직원이 이거 못 쓰겠다고 하잖아.
저의 상사: 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한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객: 왜 그렇게 길어요? 2 주 안에 해결해.
저의 상사: 내부적으로 확인해 보고 이 번 주까지 연락하겠습니다.
고객은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가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저희 회사의 상무 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마치 군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고객: A사도 2 주 안에 문제점을 해결하세요.
A사 간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장담은 못합니다. 개선을 위해 발생하는 비용 부분도 있으니 이 부분은 고객사에서 지불하실 겁니까?
고객: 왜 그 비용을 우리가 지불합니까? 그쪽 문제 아닌가요?
A사 간부: 처음 개발 시에 그런 요청 사항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객은 A사의 간부의 대꾸에 대해서 언성을 다소 높였지만 반 말은 하지 않더군요. 어쨌든 A사 간부가 고객에게 움츠러들지 않고 논리적으로 대꾸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회사 간부라면 그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회사의 상무는 고객과 미팅 시에는 한 마디도 못하고 연신 고개만 숙이다가 고객과 미팅 후에 저랑 회사에 복귀하면서 고객을 엄청나게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고객이 갑자기 전화를 걸자 다시 순한 양처럼 변하면서 깍듯한 목소리 톤으로 고객에게 존댓말을 하더군요.
아직도 고객 중에는 협력 업체를 대할 때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일부 있습니다. 정말 대기업에서는 대기업 직원들이 협력 업체를 길들이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는 걸까요? 물론 협력 업체에 대해서 무섭게 대하고 으름장을 놓아야 협력 업체가 고객을 만만하게 보지 않고 말을 잘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반 말을 하는 것은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제가 다시 이런 일을 겪으면 고객한테 얼굴을 곧게 치켜세우고 고객 눈을 똑바로 보면서 들이받고 싶습니다. 퇴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은 중소 기업계의 용감한 잔다르크가 되어 보고 싶습니다.
"너 몇 살입니까? 반 말하지 마세요, 너는 반 말하면 좋겠어요?"
고객 중에는 매너 없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격이 좋은 고객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지 소수의 매너 없는 사람이 대기업의 이미지를 갉아먹는 것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