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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Sep 26. 2021

2021. 9. 25. 토요일 잡담

서랍을 정리하다가 서너 쪽 쓰다 만 노트를 발견했다. 마지막 기록은 작년 9월. 그때 나는 책테기에 들어섰고, 책이 안 읽힌다며 후회와 다짐의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1년 후, 여전히 책테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글자가 눈에 안들어온다던 작년보다 더 적은 독서량. 이제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올해, 한 달에 열 권은 읽어야 작년과 같은 독서량이라니. 처참하다.


순전히 재미를 추구하는 책마저 읽기 힘들었다. 가벼운 판타지나 SF, 추리소설도 읽을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전자책이 익숙하지 않나 싶다가도 종이책은 너무 무겁고 구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튜브를 자주 보면서 영상 매체의 가벼움과 속도감에 매몰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올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지, 라고 해봐야 일과 사람이 주는 압박감은, 자기계발서를 아무리 읽어봐야 떨쳐내기 힘들다. 여유가 없는 머리에 텍스트를 욱여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매일 8, 9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해서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냥 쇼파에 드러누워서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면서 낄낄대곤 했다. 잘 시간이 되면 그때서야 책을 들고서는 침대로 뽈뽈뽈. 한 장이라도 봐야지, 해놓고서는 머리맡에 두고 자기 일쑤.


추석 연휴 며칠 동안 약간은 널널한 생활을 하니 글이 좀 읽힌다. 읽기 쉬운 짤막한 에세이부터 시작해 얇고 흥미 위주의 장르소설(SF가 주를 이뤘다)을 차례차례 독파했다. 스릴러에 가깝지만 어쨌든 무늬는 일반 소설인 놈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 뚝딱 읽었으니 슬슬 시동이 걸려온다. 그동안 일반 소설은 죽어도 눈에 안 들어왔는데, 이번엔 큰맘 먹고 벼르고 있던 두꺼운 소설을 폈다. 심지어 러시아 고전 문학도 중고서점에서 들고 왔다. 이것까지 소화하면 이제 조금 하드하게 느껴졌던 일반 도서까지 진출이다!


이렇게 읽기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있다. 학생 시절처럼 하루에 몇 시간이나 독서에 시간을 쏟을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생산성 있는 일을 열심히 해나가야겠다. 퇴근하면 회사 일은 다 잊고 온전한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연습도 해야겠다. 유연하고 여유롭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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