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 - 바버라 킹솔버, 은행나무, 2024
문학의 힘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상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바버라 킹솔버의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뉴욕타임즈 독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한 이 소설은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재해석했다. 단순한 각색이 아닌,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현대 미국의 맥락에서 재조명했다.
이야기의 무대는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의 시골 지역이다. '힐빌리'나 '레드넥'이라는 경멸적인 단어로 불리는 이곳 주민들의 삶은, 우리가 아는 미국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 데몬(본명은 데이먼이다)은 태생부터 불운했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약물 중독에 시달린다. 그의 성장기는 곧 미국 복지 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란 데몬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아동 노동을 강요받고, 오히려 위탁 가정에 돈을 내야 하는 현실.
잠시나마 빛을 발했던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꿈도 부상으로 무너진다. 단순한 부상의 문제가 아니다. 제때, 그리고 제가격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 - 의료 서비스의. 빈부 격차가 만든 비극이다. 미국의 의료 체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꿈을 짓밟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 지역을 휘감고 있는 약물의 그림자다. 대마초는 기본이요, 마약성 진통제까지 만연한 이곳에서 약물중독은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현실도피라는 달콤한 유혹은 결국 더 깊은 절망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이를 막을 사회적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돈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전통적 생활방식은 구식이라며 무시당하고, 대신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킬 뿐이다. 특히 미국 중부 지역의 경제적 몰락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참혹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열심히 살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에 소설은 쓴웃음으로 답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들. 교육, 의료, 복지의 기회가 철저히 차단된 환경에서 노력이란 단어는 허상에 가까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데몬의 수많은 실패는 바로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말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데몬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그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결말이다. 삶은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으로 단순히 정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는 단순히 힐빌리나 레드넥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가장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이런 어두운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우리 주변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있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소설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선 배경과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투영하고, 이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데몬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가진 진정한 가치이다.
바버라 킹솔버는 이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그리고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