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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Feb 10. 2023

악보를 읽는다는 것, 작곡가와 소통하는 것

악보는 음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과장된 퍼포먼스와 열정적인 연주가 주목 받는 이 시대에 그녀의 연주는 심플하면서도 따뜻하다.


문지영이  연주하는 피아노 트리오 연주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연륜의 대가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주도권을 잡고 밸런스를 잘 잡아내는 것을 보고 반했다. 이후 그녀가 연주하는 그 유명하고도 흔한 '엘리제를 위하여'를 듣고는 그 해석과 연주에 탄식을 했다. 누구나 다 아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이렇게 연주할 수 있다니! 그 따스하고도 영혼을 어루만지는 연주를 듣고 눈물이 흘렀다. 흔치 않은 경험인데 이런 작은 소품으로 연주자와 관객의 감정이 일치하는 것도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 후로 그녀의 연주는 챙겨보는 편이다. 어제는 아주 작은 공연장에서 관객과 아이 컨택하며 연주하고 연주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뜻깊은 공연을 다녀왔다. 


공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PROGRAM]

J. S. Bach  /  Italian Concerto in F Major, BWV 971
  I. Allegro
  II. Andante
  III. Presto

F. Schubert - F. Liszt  /  Lebe Wohl!, S. 563, No. 1

F. Schubert - F. Liszt  /  Soirée de Vienna, S. 427, No. 6

J. S. Bach - F. Busoni  /  Chaconne in D minor, BWV 1004




프로그램의 의도를 묻자 보통 리사이틀에서 잘하지 못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로 채워 넣었다고 한다. 특히 두 번째부터 네 번째 곡은 피아니스트들이 편곡한 곡으로 준비했는데 요즘 공부하는 새로운 레퍼토리의 일환이라고 답한다. 


관객이 문지영에게 질문을 했다. 

"새로운 곡을 공부할 때 무엇을 먼저 하시나요?"


"악보를 그냥 봅니다. 머리에서 음악을 상상하고 내 머릿속에서 생각한 음악을 건반에서 구현하는 과정을 좋아합니다." 


*문지영의 리사이틀 마지막 곡. 바흐의 바이올린을 위한 샤콘느를 작곡가겸 피아니스트인 부조니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작품.                  

https://www.youtube.com/watch?v=Fu-9frVpssg

내가 학생 시절엔 암보로 곡을 외워야 곡을 완성할 수 있었고 완성 후에 새 곡을 받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새 곡을 받으면 악보를 눈으로 읽었다. 음반도 귀하고 유튜브도 없어 음악을 바로 듣기 힘든 시절이었고 소품 하나 듣자고 음반을 살 수 도 없으니 당연히 악보를 눈으로 읽으며 머릿속에서 재현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템포를 살피고 박자를 보고 조성을 파악하고 조표와 임시표를 구분하고 작곡가가 써 놓은 음악 용어를 사전에서 찾고 박자를  손가락으로 카운트해서 악보를 읽었다. 


음표를 읽으면 머릿속에서 음악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천천히 읽으면 느리게, 빠르게 읽으면 날아가듯 음악이 그렇게 머릿속에서 흘러나온다. 이 과정을 참 사랑했다. 손가락을 건반에 가져오면 머릿속의 음악은 깨지지만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 연습이었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음악과 실제의 소리를 맞추어 나가는 과정, 이것이 곡에 대한 해석이다.    


요즘은 유튜브 검색만 하면 무슨 음악이든 찾을 수 있어 자료는 넘쳐나지만 악보 리딩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르치는 학생 중에 일정 수준이 넘어가는 학생들도 스스로 악보를 보려 하지 않는다. 너무 어려워하고 엄두를 내지 않는다. 바로 유튜브부터 보고 악보를 같이 읽는다. 

이 과정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본인만의 해석은 사라진다. 애초에 남의 음악을 들으며 시작을 했으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없어진다. 


악보는 검은색 음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음악은 음표와 음표 사이의 쉼표에서 더 빛을 발한다. 

소리를 내고 노래를 한다는 것은 쉼표가 있기에 가능하다. 작곡가는 음표로만 말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음악용어로도 말하지만 페달 표시, 이음표, 붙임줄, 늘임표, 도돌이표, 박자표로 여러 정보를 준다. 그 시대를 연구하고 작곡가가 당시 처한 환경이나 어울리는 친구들을 알면 곡 해석에 더 도움이 된다. 죽어서 이 세상에 없는 작곡가에게 작곡 의도를 물을 수 없으니 작곡가가 당시 어떤 심정으로 곡을 만들었을지 유추하는 과정은 즐겁다.     


악보를 책상에 앉아서 가만히 들여다보며 작곡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연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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